머무는 자리

by 길을 걷다가

한때

세속의 혼미에서 벗어나

푸르게 날 선

청정한 납자(衲子)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허망한 바람이었을 뿐,

시절 인연 따라

잠시 머물다

조용히 끝을 맺은 적이 있다.

속세와 출세,

그 사이에

경계는 없었다.

살아낸다는 건

모든 게 수행이다.

아침마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한 발짝 뒤에서

세상을 응시한다.

찻잔 속엔 욕망의 파도가 일렁이고

이내 바다는 잔잔해진다.

아침 햇살이

가사(袈裟)처럼 부서져 내리고

잔잔한 미소가

잔향처럼 스며든다.

아!

속세간이 따로 없구나.

이 자리가

곧 천년 고찰(古刹)이다.



시세를 바라다본다는 건 욕망의 한복판에 서있는 것이다.경계에 끄달리지 않기 위해서는,

추상같은 지조가 있어야 한다.

"숫자는 흐르되 내 마음은 머물고, 세상은 요동치되 내 숨은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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