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by 길을 걷다가

비가 떨어지듯,

바람이 불듯,

우연히.

우리는 약속도 없이 이 자리에 도착했다.


이름도 없던 존재가

이름을 얻고

이야기를 얻고,

상처와 기쁨을 하나씩 주워

'나'가 되었다.


무언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무언가를 지키며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삶이 가끔 가볍게 느껴질 때가 있다.

대단한 사명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우연히 왔으니

우연히 머물다 가도 된다는 안도감.


우연한 존재로 태어났다면,

너무 완벽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조금 삐걱거리고,

조금 늦고,

조금 모자라도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기적에 가깝다.




"우연의 비가 내려 만들어진 웅덩이에, 우리는 각자의 하늘을 비추며 잠시 머무는 중입니다. 그 웅덩이가 조금 탁해도, 흔들려도, 하늘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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