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밑에 한 아이

by 길을 걷다가

길을 나서니 촉촉이 봄비가 내리고 있다. 칠리한 공기를 가르며 대운동장 트랙으로 향한다. 평소와 달리 인적이 드물다. 젊은 친구 몇몇이 비를 맞으며 러닝을 하고 있다. 러닝 하는 젊은 친구 등짝 위로 더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청춘은 아름다운 것이여."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추적추적 봄비가 발걸음에 장단을 맞추어 준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이었다. 그날도 오늘같이 칠리하게 봄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집에서 쫓겨났다. 나가서 죽으란다. 맞기도 싫고 해서 우산도 없이 오기로 뛰쳐나왔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해서 무작정 걷다가 비를 피해 어느 집 처마밑으로 피신했다. 배는 고프고 왜 그리 춥고 떨리던지. 정말로 어디 가서 죽고 싶었다.

자존심 굽히고 들어가긴 싫고 해서 어둑어둑 어둠이 내릴 때까지 입술을 깨물고 오들오들 떨고 서있었다. 아버지 퇴근 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퇴근하시고 내가 없으면 분명 막내를 찾아 나오시리라 믿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다. 옷은 흠뻑 젖고 미치도록 배고프고 춥다. '처마밑에 한 아이 울고 서있었다.'

희미하게 나를 부르는 아버지 소리가 들려온다. 왈칵 울음이 터진다. 마지못해 억지로 끌려가는 듯 집으로 들어간다. 어머니는 본채도 않고 아무 말도 없으시다. 보글보글 된장이 끓고 있다. "와 이리 맛있나?"

입으로 먹는 건지 코로 먹는지 눈물콧물범벅이었다. 처마 밑에 한 아이가 그렇게 울다가 먹다가 곤히 잠이 들었던 어떤 비 오는 봄날의 회상이다.


https://youtu.be/33VnvoPz8A0?si=yRQwWRDgTlI454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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