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by 길을 걷다가

예전 어릴 적 한옥에 살 적에

한여름 오후 대청마루에 돗자리 깔고 누워 하늘을 보노라면

묘한 공허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었다.

가장 화려하고 찬란한 계절에 느껴지는 아이러니였다.


대청마루 위로 솔바람을 솔솔 불어오고 두둥실 떠가는 뭉게구름

앞마당 정원엔 맨드라미, 붓꽃, 백일홍이 소박하게 피어있고 그늘막엔 게으른 댕댕이가 배를 깔고 꾸벅꾸벅 오수를 즐기고 있다.


여름날 오후에 느끼는 공허함.

가만히 생각해 본다.


꽃은 저절로 피지 않는다.

다 나름 깊은 사연이 있다.

허투루 피어난 꽃이 어디 있겠는가?

진력을 다해서 피어난 것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아름다움 속엔 공허함도 숨어 있다.

아낌없이 속을 태웠기 때문이다.

한 여름 오후가 이렇게 쓸쓸한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꽃은 저절로 피지 않고

여름이 이렇게 뜨거운 건

진력을 다해

가을을 준비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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