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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곰돌이 Feb 06. 2024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1.14


2024년 1월 14일 일요일



모자와 선글라스로 햇빛을 차단한 채 집 밖을 나섰다.


버스에 지현이와 나란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데이트 중이다.


둘 다 한껏 코트로 멋을 내고 목도리를 목에 둘러 추위를 막아본다.


봉명동 매드블럭 영풍문고에서 책 구경을 했다.


베스트셀러엔 무엇이 올라왔는지 새로 나온 책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읽은 책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며 한 바퀴 돌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흐른다.


책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오늘의 영풍문고 방문 목적은 일본어 책을 사는 것이다.


4월에 일본에 놀러 갈 때를 대비해 일본어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히라가나, 가타카와 기본 일본어를 습득하고 간단한 회화와 단어를 공부해 일본 여행을 더 재미있게 즐기면 얼마나 좋을까.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했기에 다시 공부한다면 두세 달 안에 쉽게 기본 일본어를 할 수 있겠다는 혼자만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휩싸여 있다.


'고노 방구미와 고란노 스폰서노 데쿄데 오구리시마스.'


(이 방송은 이 스폰서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봐왔던 일본 애니에서 나오는 아주 유명한 말이다.


내게 일본어를 하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말이다.


벌써부터 일본어를 읽으며 간단한 말을 하는 일본 여행이 즐거워진다.



책 쇼핑을 마치고 추억의 '스바라시 라멘'에서 라멘 한 그릇을 먹었다.


지현이와 연애 초반에 오고 거의 2년 만에 오는 곳이다.


대학생 때부터 매우 유명했던 맛집인데 10년 넘게 장사가 잘 되는 곳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일본 여행 예행연습 중이다.



단골 카페인 '숨인'에 주인아주머니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갔다.


커피와 스콘을 주문하고 책을 읽었다.



아직 읽고 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분명 10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 내 기억과 너무 다른 내용에 살짝 충격을 받으며 더욱 정독하기 시작했다.


기억 속에서는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여주인공이 앉아 남주인공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그런 장면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 내가 읽은 책은 도대체 무엇이라는 것인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명작이라는 냄새가 깊게 풍겨오는 책이다.


지금부터 다시 길고 긴 독서 리뷰를 시작해 본다.



(정말 길다. 그래도 천천히 읽어보길 바란다.)





"그는 그에게 책꽂이를 주문할 예정이다. (중략) 그 순간, 그는 불현듯 자신이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사비나라는 육체의 존재가 그가 믿었던 것보다는 훨씬 덜 중요했던 것이다. (중략) 그의 자유와 새로운 삶이 부여한 이 예기치 못한 행복. 이 편안함. 이 희열, 이것은 그녀가 그에게 남겨준 선물이었다."



사비나와의 불륜 관계가 끝이 나고서야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장면이다.


애정이 없던 부인과 교류가 없던 자녀, 육체적 관계만 원했던 사비나, 모든 사람과 헤어지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선물인 책꽂이를 주문한 순간 그는 드디어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했을 때 비로소 자신만의 인생이 완성된다는 깊은 철학을 남긴 내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릴 때 읽고 나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인생을 알고 생각이 더 깊어진 조금 더 나이가 든 지금 다시 이 책을 읽어보니 얼마나 좋은 책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역시 책이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이동진 평론가가 이런 비유를 했다.


'영화는 말하자면 술 같은 거고요. 책은 물 같은 거예요.'


우리는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살기 위해 책을 더 열심히 탐닉해 보자.



"애교란 무엇인가? 딱히 그 실현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지만 성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애교란 성교가 보장되지 않는 약속이다."



앞서 사랑에 대한 표현과 마찬가지로 애교에 대한 비유에 나도 모르게 손바닥을 쳤다.


단지 애교를 유혹이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심연을 내다보는 안목에 잠시 감탄의 시간을 가져본다.



"그들은 토마시가 한 번도 본 적 없던 이상한 미소를 그에게 지어 보였다. 은밀한 공범자끼리 나누는 어정쩡한 웃음. 그것은 창녀촌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남자가 지을만한 웃음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조금은 부끄러워하지만, 동시에 그 부끄러움이 피장파장이라는 점 때문에 즐거워한다. 그들 사이에는 일종의 연대감 같은 것이 형성된다."


"그가 당국이 요구하는 대로 후련하게 자술서를 써 버린다면, 그 작자들이 집으로 초대하여 술을 권하고 가깝게 지내려고 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경악했다."



양심에 찔리는 행동을 한 공범자라는 표현을 이렇게 고급적인 비유로 승화한 문장에서 깊은 감명을 느꼈다.


인간은 공범이 되었을 때 큰 유대감을 느낀다.


토마시는 적어도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공범의 유대'의 역겨움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의사라는 높은 권위를 포기한다.


한 상황을 설명하는 비유에 대해 깨닫게 해주었다.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인간은 모든 존재에 있어서 동일한 것, 자신에게 공통적인 것만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복잡한 문장으로 저 단락을 이해하기 위해 최소 다섯 번은 읽은 것 같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자아'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타인을 바라보고 비교하고 타인을 통해 나를 생각함으로써 우리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장이 상당히 복잡하게 구성되었다.


밀란 쿤데라가 프랑스에서 산 적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복잡하고 복잡한 프랑스 어법에 영향을 받았나 보다.



"사랑의 역사는 그 후에나 시작되었다. 그녀의 몸에서 열이 나는 바람에,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 그랬듯이 그녀를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자 불현듯 그녀가 바구니에 넣어져 물에 떠내려 와 그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은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이 너무 아름답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강렬하게 어떤 순간이 뇌리에 박히는 때가 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 사람이 클로즈업 되고 주변이 블러(blur) 처리가 되며 그 사람에게 후광이 비치게 되는 그 순간 말이다.


그 순간이 바로 사랑이 은유로 시작되는 순간이 아닐까.


내겐 미크멧에서 지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나서 대화를 할 때, 나를 칭찬하며 웃었던 그 미소와 그 눈빛을 바라보던 그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의 모든 결심 기준은 하나뿐이다. 테레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말 것. 토마시는 정치범을 구할 수 없었지만 테레자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다."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것보다 생매장당한 까마귀를 꺼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요."



드디어 토마시는 테레자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깨닫는다.


그렇게 다른 여자와 육체적 관계를 지속하더니 테레자와의 대화 끝에 그는 사랑을 깨닫는다.


왜 이렇게 외국 소설에선 바람이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문화의 차이일까.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책의 제목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책의 앞부분에 나온 니체의 '영원회귀'와 연관되는 말이기도 하다.


개인의 역사는 한없이 가벼운 것이다.



"어떤 인간 존재도 다른 사람에게 전원시를 선물할 수 없다. 오로지 동물만이 할 수 있는데, 동물만이 천국에서 추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개 사이의 사랑은 전원적이다. 갈등이나 가슴이 메이는 장면, 진화 같은 것이 없는 사랑이다. 카레닌은 토마시와 테레자 주위로 반복에 근거한 삶의 원을 그었고 두 사람도 그에게 같은 일을 해주길 기대했다."


"카레닌이 개가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틀림없이 테레자에게 오래전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봐, 매일같이 입에 크루아상을 물고 다니는 게 이제 재미없어. 뭔가 다른 것을 찾아 줄 수 있겠어?" 이 말에는 인간에 대한 모든 심판이 담겨 있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는 갈등과 불화 사랑 등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출구가가 없는 미로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동물 사이는 오로지 애(愛)만 있는 일방통행 길이다.


동물은 우리에게 한없이 일방적인 애정을 가져다준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절대 최종적으로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를 직선에 비유했다.


우리가 직선의 길을 나아가기 위해선 계속 행복이라는 채찍질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녀가 방에서 뺨에 대고 비비던 토끼에 대해 생각했다. 토끼로 변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그가 힘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부터 두 사람 모두에게 더 이상 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책의 중간에 이미 토마시와 테레자가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죽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비극을 먼저 알려주고 행복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방식 때문에 토마시와 테레자의 인생이 더욱 슬퍼 보인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우리의 인생에서 행복과 슬픔은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이다.


빛과 그림자 관계처럼 행복이 비치면 그 이면엔 반드시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하지만 그 관점을 잠시 바꿔보자.


슬픔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반드시 행복의 빛이 있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언제나 슬픔 속에 행복을 채우며 살고 있다.


그러니 지금 슬프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



그 속엔 당신의 인생을 웃게 만들어줄 행복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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