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곰돌이 Feb 14. 2024

그렇게 마늘빵은 호(好)가 아닌 불호(不好)가 되었다.

1.18


2024년 1월 18일 목요일



일기를 제때 적지 않으면 생기는 부작용 중 하나는 바로 망각이다.


그리스 신화 속 레테의 강에서 망각의 물을 마시게 되는 망자들처럼 나도 그 물을 마셨나 보다.


사진을 보기 전까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사진도 없고 기억도 없는 것을 보니 부족한 뇌 기억 용량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는 무의미한 일들이 지나갔나 보다.



회사 앞에 '아른 베이커리'라고 맛있는 빵집이 하나 있다.


가격대가 살짝 더 있긴 하지만 그 가격도 아깝지 않은 우리가 좋아하는 2개의 빵이 있다.


바로 올리브 치아바타와 마늘 바게트다.


아른에서 마늘 바게트를 처음 사 먹었을 때 그 촉촉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달콤함과 마늘의 깊은 맛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가 먹어본 마늘과 관련된 빵들 중 단연코 최고의 맛이라고 자부하고 싶다.




근 15년 동안 마늘빵을 잘 먹지 않았었다.


대학생이 되어 독립하기 전 포항에서 온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 살 때 우리 집엔 마늘빵이 자주 있었다.


온 가족이 좋아해 엄마가 자주 사 왔다.


다섯 식구가 마늘빵 한 봉지를 먹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 눈 감추듯 마늘빵은 사라졌고 먹성이 좋던 나는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음식도 과하면 독이 된다고 했던가.


어느 날 갑자기 마늘빵이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청천벽력 같은 마늘빵과의 절교였다.


그렇게 마늘빵은 호(好) 음식이 아니라 불호(不好) 음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아른 베이커리 마늘 바게트 때문에 다시 마늘빵이 호가 되었다.


호호호(好)


몇 번을 사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이 글을 쓰며 마늘 바게트의 맛이 떠올라 뇌를 자극했고 자극된 뇌는 침샘을 반응시켜 입에서 침이 줄줄 고인다.





작가의 이전글 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잘조잘 새처럼 지저귀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