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2024년 2월 10일 토요일
나는 누워서 눈만 감으면 바로 잠들기에 어디서든 잘 자는 체질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이 아니면 잠을 설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던 새로운 나의 모습이었다.
분명 어릴 적부터 살았던 우리 집이었지만 그래도 내 집은 아니었기에 자면서 몇 번을 깼는지 모른다.
눈을 뜨자마자 아침으로 전복죽을 입속에 가져다 넣었다.
수십 년간 먹어왔던 엄마표 전복죽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인천에 살 땐 기력 회복으로 전복죽이 먹고 싶어 혼자 엄마 전복죽을 흉내 내며 전복죽을 끓여 먹었던 적도 있다.
어릴 때부터 다져온 입맛이란 건 달라지지 않나 보다.
딱 여기까지 좋았다.
이후 반찬을 하고 과일을 사러 가고 씻고 그 과정 속에 일어난 다사다난하고 스펙터클한 일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가족은 알다가도 모를 존재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온통 알지 못하는 것 투성이다.
부모는 자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식도 부모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우리 엄마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억척스럽게 살지 않길 바라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자식이라는 이유로 엄마의 행동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족이란 참 어렵다.
소중하지만 소중해서 더 어려운 존재가 가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혼을 하면 신분이 바뀐다.
이전엔 소속이 가족이었다면 결혼 후에는 소속이 남편이 된다.
바뀐 신분과 함께 행동과 일정도 변한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포항에서 하룻밤 후 다음에 오겠다는 인사를 건네고 대전으로 다시 올라갔다.
떠날 때 인사를 건네는 엄마의 슬픈 소 눈동자 같은 눈은 아무리 쳐다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대전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고 고된 길이었다.
명절이라 모든 차들이 밖으로 나왔는지 4시간 반이 걸려서야 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엔 지현이 할아버님 생신잔치로 온 처가 식구가 모여 파티를 벌였다.
거하게 한 상차림을 먹기도 하고 윷놀이부터 노래방까지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놀았다.
정말 명절이었다.
역시 명절엔 온 가족이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다음 명절엔 우리 집도 온 가족이 모여 시간을 보내도록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