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택
고양이에게 간택을 당하는 조건 중에 하나는 '운명적 만남'입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가로등 불빛이 골목을 비추고 있습니다.
비와 우산이 만나는 멜로디만 귓가에 울려 퍼지는데 어디선가 낯선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야-옹, 미야-옹."
비에 잠길 듯 말 듯 한 울음소리는 간헐적으로 고막을 때리는데 고개를 돌려봐도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느린 발걸음으로 골목을 걸어보지만 어두운 골목길엔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바닥 말고 보이는 곳은 없습니다.
걸음을 이어나갈수록 소리는 더욱 귀를 간지럽혔고 가장 크게 들리는 장소에 멈춰 서서 고개를 숙여봅니다.
툭, 구르르르.
허리를 숙이자 셔츠 위 주머니에 넣어놓은 립밤이 떨어져 굴러갔습니다.
가로등 아래 우산을 들고 쪼그려 앉아 립밤을 줍기 위해 손을 뻗자 가로등 기둥에 기댄 탁자 사이 미약하게 움직임을 보이는 작은 아기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비를 맞아 털이 젖은 상태로 떨고 있는 아기 고양이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울고 있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어미는 보이지 않았고 우리를 포함한 그 어떤 생명체의 느낌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 두기엔 소중한 작은 생명의 불씨가 꺼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듯합니다.
손을 뻗어 아기 고양이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들어 품에 안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아기 고양이와 운명적으로 만나버렸습니다.
간택당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