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카메라는 어디로 갔을까?
겨울이라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우리는 사진을 열심히 찍으며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연못 앞 벤치 위에 어떤 하얀 물체가 놓인 것을 봤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흰색 카메라였다.
벤치 한가운데 놓인 그 카메라는 DSLR처럼 보였고 꽤 좋아 보였다.
주변에 2~3 그룹의 사람들이 우리처럼 사진을 찍으려고 돌아다니고 있었고 우리 외엔 아무도 이 카메라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혹시 주변에 주인이 있을까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고가의 DSLR 카메라인데 그리고 렌즈도 좋아 보이는데 벤치 위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을 보니 살짝 나쁜 마음이 샘솟기도 했지만 흑심을 꾹꾹 가슴속 깊이 눌러 담아 자물쇠를 채웠다.
그리곤 주인이 곧 찾으러 오겠지 하고 우리는 다른 산책로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뒤를 흘끔흘끔 쳐다봤는데 흰색의 카메라가 너무 눈에 띄었다.
그러면서 역시 한국은 치안이 너무 좋다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 외에 몇몇 사람들이 분명 저 카메라를 봤을 텐데 아무도 가져갈 생각을 안 했나 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카페에서도 휴대폰, 노트북 등등의 값비싼 물품이 주인 없이 테이블에 놓여 있어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정말 신기한 나라인 것이 한번 더 생각났다.
지현이와 함께 카페를 가면 가끔 지현이가 자리를 잡기 위해 휴대폰을 놓고 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내가 '비싼 휴대폰 안된다고 휴대폰 말고 다른 걸 올려놓고 오자'하고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휴대폰을 놓고 와도 우리나라에선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카메라도 그런 것 같았다.
다들 지나가면서 주인이 근처에 있겠지, 곧 찾으러 오겠지, 괜히 건드렸다가 도둑으로 몰리기 싫어 등등의 양심적인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비싸 보이는데 주인이 진짜 없다면 가져갈까 하는 흑심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실천으로 옮겨 실행하기엔 우리나라 특유의 착함이 가득해서 이렇게 카메라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 같았다.
공원을 산책하고 사진을 열심히 찍으면서도 그 카메라 생각이 났다.
'주인이 무사히 가져갔을까?'
'설마.. 아직도 있을까?'
'혹시 흑심을 품은 다른 사람이 가져가진 않았을까?'
그러곤 되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그 벤치가 있는 쪽으로 갔다.
저벅저벅 걸어가면서도 낙엽과 나무 벤치 위에 놓인 흰색의 물체가 멀리서도 보였다.
처음 발견하고 시간이 1시간은 넘게 지난 것 같았는데도 카메라는 그저 덩그러니 주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 주인이 찾아가지 않는 것을 보면 정말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카메라를 어디에 뒀는지 까먹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카메라가 너무 많아 한 개를 여기에 버리고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웃긴 생각도 해봤다.
또 약간의 흑심이 들었지만 그리고 카메라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전부터 하긴 했지만 좀 더 있으면 주인이 다시 찾으러 오겠지 하는 생각과 나쁜 짓은 할 수 없다는 양심이 계속 나를 불러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갔다.
만약 정말 주인이 없는 카메라라고 할지라도 가져갔다면 그 카메라를 사용하는 내내 이건 내가 합당하게 돈을 주고 산 카메라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버려지거나 잊힌 카메라라는 생각에 충분한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지 못했을뿐더러 항상 사용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게 공원에서 산책을 모두 마치고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공원을 빠져나가는 길에 잠시 정차하여 오른쪽 창문을 통해 아직도 문제의 흰색 카메라가 벤치 위에 놓여 있는지 확인을 했다.
그리고 역시나 카메라는 벤치 위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저 카메라가 아직도 있다면서 하하호호 웃으며 미련 없이 그 공원을 빠져나왔다.
그 카메라를 발견한 지 벌써 6개월이 훌쩍 지났지만 종종 생각이 난다.
안동에서 좋은 추억들도 있었지만 흰색 카메라의 행방이 제일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