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독 두려움이 많고,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거나 심장이 과부하에 걸려
요동치게 되는 날이면 목전에 산 정상을 두고도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포기한 뒤
언제든 마음 편히 오를 수 있는
아담한 뒷동산이 주는 풍경에
심취해 그 아늑함으로 세월을 보내왔다.
여기서 어느 날 문득 알게 되는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내가 그토록 닳고 닳을 만큼 오르내리며
풍성히 가꿔온 나의 뒷동산마저
내 것이 아닌 다른 이의 소유이자 결실이었단 사실이다.
나의 정성과 노력으로 일궈온 농작물 밭작물이
내 것이 아니라니….
이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결국엔 나는 내 삶이 아니라 남의 삶을 대신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매 순간 더욱 정진하고 나를 채우려 노력하며 산다.
내 안에 나로 채워 넣는 일….
늘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맞춰
맞춤복처럼 편안한 사람인 양 살아온 내가
내 안에 나로 보양하여 채워 넣고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당당한 나로 세우는 일은
언제나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모험 같은 일이다.
수시로 드나들며 나를 갉아먹는 지난 시간 동안
단련돼 있는 가난하고 비겁한 내가 불쑥 나타나 온정신을 혼란스럽게 흩트려 놓기 때문이다.
관성으로 말미암아
원래 몸에 익숙한 습(習)대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간직한 나를
붙잡고 애원하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한다.
꽤 오랜 시간 세파 속에 던져져
하염없이 다른 이의 삶 속에서 박자를 맞추듯
살아온 자존심 따윈 찾아볼 길 없는 내가
때로는 말도 안 되게 미워졌다가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세상 밖 사람들 중에서 나를 인정하지 않는
그 누군가마저 가담하여 의도적이던 의도적이지 않던
내게 찾아와 내 발을 '악' 소리 나게
지르밟고 유유히 가버리는 때에는
삶의 회의감마저 들기 시작한다.
왜 그들은 그토록 내겐 잔인한
상흔을 남기고 가버린 걸까?
왜 내게 유독 내게 함부로 나쁘게 그랬던 것일까?
그마저도 알고 보면
나는 또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내 안에 내가 세운 사람들만 즐비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참 지질하다 못해 가난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사람은 결코 고쳐서 쓰지 못하지만
인생 또한 살아온 길 따라 나 있는 결이 있어서
그리 쉽게 바뀔 일 없겠지만
그래도 노력해 본다.
오늘 노력하고,
며칠 뒤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오늘 이 하루를 온통 나로 내 삶으로 꿰뚫으며 통찰하고 공부하였다면 하루치의 경험만으로 족한 것이다.
내일이 찾아와
나로 채워진 오늘 하루 삶을
모두 희석해 버린대도,
결국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대도
나는 다시 나로 부단히 채워 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