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는 것들 3화

부제 : 그때, 잘못은 없었다

by 글쓰는 앳지


그때 잘못은 없었다


2005년, 한 소녀가 세상을 견디는 공식,

인생에서 빼버리고 싶은 것들은

모조리 숫자 0이 붙었다.

'부디... 아무런 영향 없도록...'


어쩜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고등학교 3학년.

2005년의 봄은 유난히 밝았다.

길가엔 분홍빛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웃고 있었고,

하굣길엔 어김없이 노을이 물들었다.


그 평온한 풍경 속에서 나는

그저 '별일 없는 사람’이고 싶었다.


공부하고, 대학을 준비하고,

매점에서 친구들과 소보루빵과 딸기우유를 나눠 먹으며

그날 본시험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그렇게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길 바랐다.


하지만 열여덟의 나는 곧 알게 되었다.

고요히 살아가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 시절이 있다는 걸.


그날, 2005년 5월 6일.

교실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나는 이유 없이 ‘대상’이 되었다.


어제까지 밥 먹고 간식을 함께 나누었던 건너 건너 아는 친구부터 절친 17명이 내 자리를 둘러쌌고,

시내 학원에선 수십 명의 여학생이

내 존재를 하나의 농담처럼 소비했다.


그들은 벽을 보고 말하듯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고 동물원 원숭이 보듯 쳐다봤고, 조롱하듯 웃었다.

눈빛 하나, 말투 하나, 책장을 넘기는 손마디까지

날 구성하는 세포 하나까지 다 ‘얄밉다’는 이유가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평화를 기원하는 방어가 되지 못했다.

말이 없다는 이유로,

시선을 피한다는 이유로,

날마다 더 큰 조롱거리가 되었고 아무 때나 공격이 쏟아졌다.


“잘난 척하냐?”

그 질문 앞에 어떤 대답도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침묵은 거만함이 되었고,

대꾸는 도발로 그들만의 언어로 해석되었다.


그때의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폭력은 이유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구실로 정당화된다는 걸.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아니 정확히 생존을 위해 귀를 열었다.

누가 다가오는지,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지,

오늘은 누가 나를 향해 무언가를 던질지 소리부터 먼저 들어야 했다.


복도에서 몰려오는 발소리,

문고리가 덜컥거리는 소리,

교실문이 쾅 닫히는 그 찰나의 순간들.

모든 소리가 AI처럼 내 안에 저장되었다.


그때 알았다.

어릴 적, 퇴근하던 아버지가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길을 막 들어설 때

그 희미한 멜로디만으로도

아빠가 곧 대문을 열고 들어올 거란 걸 예감했던 그 예민한 청각이

사실은 신이 특별히 주신 생명의 장치였다는 걸.


세상을 피할 수는 없어도

예감할 수는 있었던 나는,

그렇게 하루를 버텨냈다.


열여덟의 나는 매일 아침

전쟁터에 끌려가듯 학교로 갔다.

다른 애들의 가방엔 필통과 간식,

다정한 쪽지와 친구들의 다이어리가 담겨 있었지만,

내 가방엔 불안과 경계심이 들어 있었다.


책상 위엔 언제든

교과서 대신 비난과 비아냥이 올라왔고,

복도 끝에선 욕설이 담긴 쪽지가 종이비행기가 누군가의 흥을 싣고 날아왔다.


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 시절의 나는

말할 기회를 잃은 존재였고,

설명할 권리를 박탈당한 한 인간이었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다.

그건 아이들의 가벼운 싸움이 아니라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눈에 띈다’는 이유로 또 그 애가 만만하다는 이유로

한 명의 소녀가 학교와 사회로부터 판결받고,

형을 살고 있었던 감옥이었다는 걸 말이다.


그들은 나를 향해 돌을 던졌지만,

그 돌엔 주인이 없었다.

피가 나도, 멍이 들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가해자 없이도 폭력은 완성되었다.


그렇게 나는

굳이 살아남았다.

말없이, 울지도 않고,

무너지지 않은 채,

그 시절을 짊어지고

강제로 통과해 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안다.

그 시절이 내게 남긴 것은

굳어버린 마음만이 아니었다.


아무도 완성시키지 못했을,

혼이 살아 있는 강렬한 포스터로

세상 어디든 붙을 만반의 준비를 마치면서 질기게 살아남았단 걸


나라는 존재는 누군가의 인정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었다.

수없이 부정당하면서도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끝내 자신을 믿어낸 그 고독한 시간 속에서 조용히 태어나는 이끼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 이제,

그 모든 말들, 시선들, 소문과 낙서, 쪽지와 조롱을 지나

나 정민아는 포스터가 되어 말할 수 있다.


그때, 잘못은 없었다.

정말,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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