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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진 Apr 08. 2020

A pint of beer

영국의 펍 문화.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많이 받게 된 질문"영국에서 제일 좋았던 게 뭐예요? 뭐가 제일 그리워요?"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몇 가지들 중 제일 그리운 것은 사실 . 그래 펍이다. 펍에서 마시던 시원한 맥주.


한국에 수만 개의 카페가 있다면, 영국에는 아이리쉬 펍이 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펍이 자리하고 있을 정도인데, 영국 전역에 10만 개의 펍이 있다니 두말할 것도 없다.

 영국에서 처음 친해진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갔던 펍의 첫 방문. 두근두근- 설레고 마냥 신이 났던 기억이 난다. 처음 마셔보는 영국의 맥주들, 퇴근한 직장인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바에 서있는 바텐더에게 테이스팅을 부탁해 여러 가지 생맥주를 맛보던 기억. 그렇게 펍과 맥주는 내 영국 생활 중 정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낮술은 부모님도 못 알아본다' 성실함이 미덕인 한국에서는 아직 낮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창 성실히 일해야 하는 시간인 오후에 음주가무를 즐기다니, 낮부터 펍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고 있는 나를 본다면 어르신들은 혀를 쯧쯧 차며 지나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국의 펍은 낮, 밤 가리지 않고 손님이 있고, 해가 쨍하니 떠있는 오후 세시에 펍의 문을 열고 들어가 맥주를 잔뜩 마신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특히나 축구경기가 있는 날은 낮부터 펍이 바글거려 앉을자리 하나 없는 날도 있다. 자리가 없으면 다른 펍을 찾거나 포기할 법도 하건만, 기어코 그 안을 비집고 들어가 서서 맥주를 마시거나 혹은 밖에까지 나와 창가에 맥주를 올려두고 마시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정말 영국스럽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고 그런 영국이 참 좋았다.


친구와 한참을 걷다 지쳐 눈에 보이는 아무 펍이나 들어가 마셨던 캠든 타운 라거 한 잔.


 요즘은 한국에도 수제 맥주 전문집이 정말 많이 생겼다. 어느 동네를 가도 꼭 한 군데쯤은 수제 맥주집을 찾아볼 수 있다. 예전에는 맥주라면 하이트, 혹은 맥스. 버드와이저까지가 전부였지만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은 모두 에일, 라거, 스타우트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도 벨지안 스타일의 윗 비어나 페일 에일, 인디아 페일 에일 등 등 취향이 세분화되고 구체적이게 변했다.

 그중에서도 필자의 fav는 바로 씁쓸한 홉의 맛과 독특하고 화려한 향미가 매력적인 IPA다. 물론 영국 하면 기네스가 최고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고 그 말도 맞다. 영국을 방문했던 지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아무래도 기네스의 본고장이 영국이라 그런가- 한국에서 먹던 기네스와는 정말 맛이 다르다고 한다. 사실 필자가 좋아하는 IPA도 기네스도, 일반 스타우트 맥주와는 조금 다른 포터 Porter 맥주도 전부 영국에서 탄생한 MADE IN UK 맥주들이다.


영국은 펍마다 구비한 맥주들이 다양해서 여러 펍을 방문해 새로운 맥주를 찾는 재미도 있다.


"나 영국 가기 전에 기네스 먹을 때는 간장 맛 나서 싫어했어. 여행 갔을 때는 사람들이 하도 기네스 생맥 마셔보라 해서 마셨는데 깜짝 놀랐잖아. 진짜 맛있긴 하더라"

원체 흑맥주를 자주 찾는 편이 아니었기에 필자는 아무리 마셔보아도 똑같이 느껴졌다. 어찌 되었든! 기본이 되는 오리지널 기네스 생맥도 맛있지만, 혹여 단 맛이 나는 맥주도 좋아한다면 직원에게 기네스 맥주에 블랙커런트(Guinness with Blackcurrant)를 부탁해 마셔보길 바란다.

 생 기네스 맥주에 블랙커런트 과일 시럽을 몇 방울 떨어트려 만드는 이 간단한 레시피의 맥주는 영국에서 만나던 전 남자 친구의 주장으로는, 아이리쉬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레시피라고 한다. 아무래도 믿거나 말거나 말인 것 같아 직접 구글링 해본 결과, 몇몇 사람들이  아일랜드에서는 숙취를 피하는 전통적인 방법이 술을 잔뜩 마시고 마지막으로 블랙커런트 주스 한 잔을 마시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그걸 듣고 응용하여 기네스 파인트 한 잔에 넣어서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

 당연하게도 블랙커런트 시럽 몇 방울로 숙취가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외에도 펍에는 정말 다양하고 매력적인 맥주들이 많다. 펍마다 구비해둔 맥주가 다르니 몇 가지를 골라 테이스팅 해보며 새로 도전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펍에 자주 보이는 돈놀이(?) 머신. 성공하는 이를 한 번도 본 적 없다.


그렇다면 내가 그리운 것은 영국의 펍인 걸까? 아니면 그 장소에서 맛보던 맥주인 걸까?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면 가끔 정말 견디기 힘들어질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펍에 혼자 방문해 맥주 한 잔으로 나를 달래며 다시 기운을 얻기도 했고, 어느 날은 아끼는 사람들과 늦은 저녁 우르르 몰려가 크게 틀어 둔 음악보다도 시끄럽게 떠들고 웃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가끔은 좋아하는 사람과 오붓하게 마주 앉아 손을 마주 잡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은 맥주나 펍이라는 단순한 매개체가 아니라, 펍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는 알싸한 맥주의 향이라든지, 전부 나무로 꾸며져 있는 아이리쉬 펍 특유의 인테리어, 다양한 탭 비어를 눈 앞에 두고 이 펍에서는 어떤 걸 마셔볼까 잠시 고민하던 시간들,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왁자지껄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있는 사람들의 소음, 가끔 앉을자리도 없어 파인트를 손에 들고 서있는 광경. 그리고 같이 자리한 자와 나누는 대화 웃음들. 이러한 것들이 그리웠던 거다.


공간 안에 자리한 이들의 일상과 나의 일상이 함께 스며드는 것 같았던 그 기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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