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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진 Mar 06. 2021

엄마의 꿈

혹은 누군가의 꿈.


오랜만에 글을 써 보려 합니다. 바로 누군가의 꿈에 대해서요.

요즘은 그런 게 궁금했습니다. 누군가의 꿈 말이에요. 어쩌면 생활에 잊혀 가는 꿈.


제 첫 번째 꿈을 떠올려보자면 초등학생 때 꿈이 판타지 소설 작가였어요.

매일 도서관에서 대런샌이나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소설을 읽으며 다른 인생을 꿈꿨고, 수업 때는 공부는 뒷전, 공책에 나름의 소설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몇 가지 꿈들이 저를 거쳐갔어요. 와인 소믈리에, 티 소믈리에, 등등. 예전에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걸 이룰 수 있을 것 같던 제가 살다 보니 생활에 따라 꿈도 무뎌지고 희미해지더군요. 참 씁쓸했습니다. 모두 저처럼 생활에 꿈도 함께 잊혀갈까요? 아니면 나 빼고 전부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걸까요?


무섭게도 혼자 마셨습니다..


그날은 엄마와 데이트를 마치고 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어요.

어둑해진 하늘과 반짝이는 건물들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엄마의 꿈은 뭐였을까?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운전하는 엄마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꿈이 뭐였어?" 현모양처였으려나, 커리어 우먼? 아니, 꿈이란 게 없었으려나. 짧은 시간에 참 재미없는 상상들을 하던 와중에 엄마는 잊힌 꿈을 더듬으며 당황하셨어요.

"시인이었어. 엄마 꿈은." 한참이 걸렸습니다. 두 자식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았던 현실 저 아래 깊숙이 파묻혀 있던 꿈을 찾아 꺼내어 들추고, 오래된 먼지가 묻어있을 나름의 시집에 바람을 후- 불어 꺼낸 대답이.


머리가 댕- 울렸어요.

제가 생각했던 여러 후보 중에 시인은 없었기 때문이죠. 지금은 시덥잖은 예능과 워킹데드 정주행으로 하루를 소비하는 엄마의 처녀시절엔 누구보다도 세상을 세심히 바라보고, 지나가는 구름에, 바람에, 길가에 핀 꽃과 잡초에 집중하는 시간이 있었던 겁니다. 종일 책을 읽고, 날이 어둑해지면 좋아하는 공책을 꺼내들어 자신의 철학을 담던 그런 밤이 있었던 거예요. 


자식 둘을 키우며 사라진 그 꿈이, 그 시가.


그날 이후 며칠 뒤, 저는 엄마의 작은 손을 부여잡고 서점에 들렀습니다.

"엄마, 읽고 싶은 시집 골라봐 내가 살게."라며 뿌듯한 웃음을 짓는 제게 "됐어, 너 살거나 골라."라며 부끄러운 듯 혹은 잊었던 무언가를 꺼내는 행동이 어색한 듯. 어쩌면 그 바랜 것들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듯하던 엄마는 그날 제가 골라준 시집을 품에 안고 그렇게 밝게 웃어 보였습니다.

그래, 어쩌면 바램이었어요.

엄마가 시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제가 시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램.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주 어렸을 적 좋은 이야기들이 담긴 책을 서점에서 골라 선물해 주던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좋은 이야기들과 시들은 그런 엄마의 시간들이 모여 저에게 돌아온 거겠죠. 

제게 많은 이야기와 세상을 알려준 엄마는 지금도 제게는 여전한 시인입니다.


여러분의 꿈은 아직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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