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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Apr 22. 2022

바다의 끝

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해양문학을 즐기는 이유는 태생이 바닷가이며, 지금도 바다 근처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부산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 김부상은 고집스럽게 해양 관련 글을 써 오고 있다. 그의 글은 부산을 닮아 진취적이다. 이번에 출간한 장편소설 ‘아버지의 바다’는 원양어업의 출발지로서 부산을 그리고 있어 흥미로웠다.


작가가 몇 년 전에 바다 이야기를 주제로 단편들을 엮어 첫 소설집을 출간하였는데, 특히 제목으로 붙인 ‘바다의 끝’이란 말에 나는 흥미를 느꼈다. 작가가 말한 바다의 끝은 어디일까? 평생을 육지에서 산 나 같은 사람은 바다 끝의 실체나 관념, 어느 하나도 상상할 수 없다. 작가가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막상 바다에서 본 바다의 끝은 육지가 아닐까 생각한 것이 고작이다. 이후로 바다에 나가면 그 끝에 서 본다. 바다의 끝이자 육지의 끝이기도 한 그 지점에.


맞아! 수 억 년 전, 인간의 시초가 미생물이었을 시절에도 이곳은 분명 바다의 끝이었을 게다. 거기, 그 경계로부터 한 생명의 상륙과 입수가 반복되었고, 그 호기심을 시작으로 지금의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 미생물에게 바다의 끝은 지금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 땅이다. 그렇다면 거기는 끝인가? 아니면 끝이 아닌 출발점인가? 그때의 그곳이 여전히 여기에 있고, 나는 지금 거기에 서 있다. 그리하여 내가 가끔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어쩌면 그 시절에 대한 원시적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건축가인 동료의 페이스북 글을 읽고 동의하였다. “바다를 통째로 막아버렸다. 누가 이런 기획을 하였을까? 그리고 왜 아무도 이 일을 막지 못했을까? 자갈치 골목에서 바다는 사라졌다.” 지난해부터 문제가 된 소위 ‘자갈치 아지매 시장’ 건물의 건축에 대한 아쉬움의 토로였다.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는 난전을 이루던, 소위 자갈치 아지매들의 터전을 건물 안으로 옮겨 현대화하고. 내친김에 수직으로 공간을 더 확대하여 상업적으로 활용해 보자는 시도였다. 설계 공모와 공사 입찰로 일은 진행되었는데, 절차와 법에 여러 가지 오류가 생겼다. 더욱이 상인들과 조율되지 않아 건물의 활용에 문제가 많아 여전히 불만이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나와 그 건축가가 주목한 것은 길쭉한 건물의 기능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좀 더 근원적인 데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그곳이야말로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끝이기도 하고, 또한 끝이 될 수 없는 지리적 지점, 태생적으로 삶의 터전이 움튼 곳이다. 그럼에도 그 끝 지점을 다루는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무지하고 폭력적인가?


 근래에 들어 그러한 사례가 빈번하다. 폭력적 건물로 그곳의 풍경을 독점하려는 반시민적 욕망이 다반사가 되었음에도 우리는 덤덤하다. 금빛 해변과 바다를 바라보던 초록 언덕을 몇백 가구의 주민들에게만 통째로 내어주는 일도 더는 이슈가 되지 못한다. 이성을 잃은 도시가 자본에 굴복하였다는 말인가?


또 다른 이유로 나는 북항 재개발 같은 일을 반대하였다. 이 나라의 부흥을 이룬 시작과 끝점으로서의 역사와 기억과 감정의 멸절이 안타까웠다. 자갈치의 사례 또한 다르지 않다. 도시를 설계하는 학자와 관료들의 더 넓은 시야와 관점이 아쉽다.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곳이 지켜져 온 이미지와 스토리, 역사와 장소로서의 도시적 맥락에 집중하여야 한다. 하물며 난전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머~언 미생물 시절의 그리움에 빠져드는 한 생명체의 본능도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 도시는 생명체가 이루어 낸 또 하나의 생명체이며, 그 근원은 개개 시민의 가슴에 닿아 있다. 도시의 끝은 그 출발점이며 생장점이다. 끝이면서 끝이 될 수 없는 그 지점, 거기를 틀어막고 숨통을 조여서 어떤 도시로 만들려는 것일까?


끝이 막힌 바다에 선 건축가는 허탈하고, 뜬금없이 해양문학가의 자유가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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