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 방주교회 탐방기
그날 페이스북에 사진 두 장을 올린 것은 미련 때문이었다. ‘물의 엣지, 숨죽인 겨울에 빛난 물의 경계, 고요를 깨운 칼의 노래’, 결국 이런 사족이 붙여졌다. 큰 카메라를 메고 떠난 욕심 낸 건축 여행. 제주의 칼바람에 이타미_준, 그분이 건축과 함께 동결된 채로 거기에 있을 것이며, 와이드한 조리개와 냉정한 셔터는 언제나처럼 든든할 것이었다.
하지만 빗나간다. 응결을 깬 마음의 작은 동요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건축은 동결된 음악이다’라던 괴테의 선언을 지독히 혐오했던 평론가 ‘유진_라스킨’의 시니컬한 글이 떠오르다니… 그 책 이후에 일어난 이미지에 대한 내 생각의 진보였는지는 모를 일이나 나는 결국 무겁게 들고 간 카메라 가방을 열지 않기로 하였다.
셔터의 순간이 ‘찰나의 동결’이라 비하되고, 찰나의 결과물로 집적된 오랜 앨범들의 부피와 그 무거운 이미지가 조종하던 내 연필의 무게가 떠올랐다는 것은 지난 시절의 내가 찰나의 노예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숙소에 가서 둔한 필기구로 그림 몇 장이 상상으로 스케치 되었고, 집으로 돌아와서 선의 윤곽 속에다 물감을 채움으로써 대가의 건축은 겨우 기록된 것이다.
이미지 포착에 관한 전략의 변화가 분명했다. 덕분에 목표가 된 건축을 둘러싼 그 인상적이던 풍경이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굳어지지 않았고, 다양한 변주로 머릿속에 머물면서 내 감정과 상상을 살랑살랑 흔들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가벼움이란 분명 쉬이 고착되지 않을 것들이 지닌 속성, 마치 나비의 날갯짓 같은 것이리라. 애당초 이미지란 그런 류의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니 논리와 관습이 팽개쳐진 그런 방만한 자유가 늘 나를 흥분케 하였다. 설령 이 글과 그림이, 또한 찍어온 사진이 모순되고 앞뒤를 잃은들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종이 위에다 건축, 동결, 유진 라스킨, 이미지 이런 단어들을 잔뜩 늘어놓고, 황급히 일어나 그날 찍은 두 장의 사진 또한 두서없이 열었고, 헐레벌떡 물감을 풀었다. 이미지란 것이여! 그때 그 자리에서의 그 느낌이여! 어서 날아와 붓을 통하여 말을 통하여 나의 종이에 깊이깊이 스미기를.
그리하여 빈약한 손과 서투른 상상력에 치를 떨더라도 나는, 글과 그림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던 그 날개를 단 이미지들의 분망함을 사랑하리라. 포획되지 않고 동결되지 않는 그것들의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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