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이미지(image)란 말은 사람이 머릿속 생각을 외부로 표출한 그림이나 물건 등을 나타내거나 사람, 단체, 물건 등의 인상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라고 사전은 설명한다. 그렇다면 건축의 조형은 어떻게 이미지화되는가? 그리고 그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라는 문제는 건축가들의 영원한 숙제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로마의 건축가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는 건축의 삼 요소를 견고함(firmitas)과 유용성(utilitas), 또 아름다움(venustas)이라고 규정하였다. 조형이 건축의 중요한 요소이고, 이는 곧 건축이 이미지화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후 건축 조형은 모든 미적 사조와 연관되어 있었다. 고전주의,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를 거쳐 국제주의 양식과 모더니즘,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에 이르기까지.
반면, 거대한 자본과 권력이 개입되는 건축의 외관은 조형적 의미에 또 다른 요소 하나를 짐처럼 지고 있다. 이른바 상징성이라는 덧씌움이다. 상징성은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건축의 근원적 역할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건축가들이 다투어야 할 또 하나의 방향이다.
건축에 이미지를 부여한 사례는 스톤헨지나 고인돌과 같은 거석문화에서부터 발견된다. 즉 건축이 상징화됨으로써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후로 건축의 기술은 기능을 넘어 거대한 상징을 실현하는 데에 몰두한다. 불가사의와 아름다움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피라미드,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유산은 인간의 힘으로 신의 영역을 구축하려는 상징물들이다.
제국주의 시대나 파시즘 시대의 건축에서는 그 이미지의 활용이 극대화되었다. 상징화된 건축의 이미지만큼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제압하는 도구가 있을까? 아돌프 히틀러가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의 힘을 빌려 권력을 이미지화한 것이 좋은 예이다. 이후 공산국가와 개발도상국의 권력자들은 건축의 이미지화에 몰두하였고, 많은 건축가가 동원되었다.
그러한 욕망은 스톤헨지의 시대로부터 하나의 진보도 이루지 못하였다고나 할까? 건축을 이미지화하려는 인간의 열망은 끝이 없다. 도시의 건축들은 끊임없이 높이 경쟁을 한다. 여의치 않으면 건축의 머리에 관(크라운)을 씌우고 불을 켜서 브랜드화시킨다. 자본이 권력이 된 이후에 더욱 심화한 이미지화의 결과물들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여전히 그런 역사 속에 있다. 학교의 건축들조차 그러했으나 차츰 반성 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군사 시설이나 사법 등의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건물들은 여전히 매우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건축되고 있다. 그러한 건축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찌 제국주의 시대의 그것과 다르다 할까?
대통령 집무 시설의 이전 문제가 시민들의 입에 뜨겁게 회자하고 있다. 나는 대상이 된 건물들의 이미지를 살펴보았다. 기능, 효율, 역사, 예산, 심지어는 풍수지리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에 앞서 오로지 건물의 이미지에 국한하여. 경직된 수직선들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푸른 기와가 얹힌 익숙한 건물보다 더욱 권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물며, 위압적이고 건조하니 그 앞에 서면 덜렁 겁을 먹을 것도 같기도 하다.
건축은 기능이기도 하고 풍경이기도 하다. 또한, 집의 모습은 짓고 사는 사람들의 사고에 은연중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특히 공적 건물의 경우에는 개별적 감정을 넘어 집단의 정서를 대변하는 이미지로 고착화한다. 이미지의 힘이다. 이즈음에 봉준호의 영화에 몰두하고, BTS의 음악에 열광하는 세계의 사람들에게 투영될 이 나라의 이미지를 생각해본다. 하릴없는 건축가의 기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