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건축사신문에 연재를 결정하고 첫 글이 ‘노트르담’이었다.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건물에 대해 안타까움과 오래전 ‘비올레-레-뒤크’라는 불세출의 건축가가 이 건축을 복원했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썼다. 그리고 이 년 여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스물일곱 번의 연재를 하였다.
개인적으로 무척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덕분에 그림을 일상처럼 그리게 된 것도 그렇고, 공공재로서의 건축과 그 건축을 해나가는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할까? 천성이 둔하여 깨달음이 늦었다 치더라도 그건 무척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타인을 향해 나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은 역으로 나를 다시 다지는 일이 된다. 덕분에 더 나은 건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건축사신문’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마지막 그림으로 무엇을 선택하고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내내 고민하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중앙동길을 오랜만에 걸었다. 동료들과 야외 스케치라는 유쾌하고 즐거움도 있었지만, 한편 아련하고 아슴아슴한 감정이 겹쳤다. 뜻하지 않게 몽롱하고 아련한 시간 속이었다. 더러는 저세상으로 떠난 오래된 사람들의 그때는 미처 몰랐던 온기와 사십 년 전의 음식 냄새, 그리고 퇴근 무렵에 느끼던 낡은 외투 속의 체온과 어슴푸레하고 약간 푸르렀던 거리의 색깔.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해 내었다.
건널목 저편으로 보이는 일광상사는 제도 용품을 판매하는 오래된 상사이다. 부산에서 지도를 판매하던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견습생 시절부터 이 집을 드나들었다. 얼른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려 두기로 하였다. 당시에 사용하던 0.2, 0.5밀리 로트링 펜을 특별히 사용하고, 다른 그림보다 유달리 선에 더 신경을 쓴 게 사실이다.
생각해 보니, 그 시절의 젊음과 열정이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참 바쁘게 흘러버린 시간. 나는 그 시간을 느긋하게 다시 건너가 본 것이다. 참 다행인 것은, 그 일광상사가 여전히 40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속으로 외쳤다. “아~ 아날로그 화이팅!”
시간을 정지할 순 없을까? 불가능하지만 늘 아쉬운 바람이다. 흐르지 않는 시간은 어디에 존재할까? 내 마음속일까? 아니면 마음을 비운 후, 빈 가슴의 바깥에 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광상사 앞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 맞아! 삶은 길과 같은 것이야. 건널목과 같이 가끔 멈추어야 하는 곳이 있고, 이내 또 바삐 걸어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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