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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May 20. 2022

산책길의 플래카드

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청년 시절에는 느끼지 못하던 산책길의 걱정거리. 내려갈 때는 올라갈 걱정, 올라갈 때는 또 내려갈 걱정. 이 도시가 유달리 높낮이의 기복이 심한 데에도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이가 들어 힘에 부친 것이다. 출발한 지점으로 되돌아가야 하고, 두 다리로 해결해야 하니, 이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물리적 사용 연한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하물며 길을 잃을 때도 있다. 눈에 익은 길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야트막하던 구릉이 어느 날 높은 옹벽에 둘러싸이고, 차량 차단기나 철제 담장에 가로막혀 돌아가야 할 일도 많아졌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면 하늘은 까마득하고, 다시 숙이면 마치 기계의 회로처럼 직선으로 뚫린 길이 삭막하게 다가온다.  


그런 산책길 여기저기에 얼마 전부터 같은 내용의 플래카드가 붙기 시작하였다. “우리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 시작을 축하합니다.” 시간이 흐르니, 새집에도 예외 없이 문제가 생기고, 리모델링 시점이 도래하였나 보다. 그러고 보니 수천 세대의 이 동네의 아파트들은 마치 쌍둥이처럼 한날한시에 지어진 것이 아닌가?


돌이켜 보니, ‘주택 2백만 호 건설’을 주창하던 해가 1990년 무렵이었고 전국적으로 아파트 건설 바람이 불었다. 이후 대도시를 시작으로 중소도시, 농어촌으로, 이 나라는 목하 아파트 공화국이다. 그때 나는 아파트의 미래에 대하여 걱정한 바 있다. 마치 나이 든 내가 산책길을 내려갈 때 올라올 걱정을 해야 했듯이. 동시에 지어지는 이 집들은 일시에 수명을 다할 것이고, 지금의 건설 광풍 못지않은 혼란이 도래할 것이라는. 하지만 정작 내 집의 수명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집도 나도 젊었기 때문이었을까?


더 큰 문제는 ‘공동’이란 말에 있다. 단독주택과 같이 개개로 나누어져 있는 집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지만 태생부터 합의의 숙명을 안고 태어난 집, 이른바 공동주택이기 때문에 계획, 시공, 결산에 이르기까지 합의를 전제하고 있다. 어찌 보면, 건설될 때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아파트마다 붙은 플래카드는 축하의 의미가 아니라 결속을 다지는 비장한 각오로 읽힌다.


또 하나의 벽은 경제성이다. 집이 모자라던 시절에 집이란 상품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고나 할까?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어찌어찌하여 돈 한 푼 안 들이고 새집이 생기고, 건설회사도 떼돈을 벌었으니 무슨 문제였을까? 하지만 집이 남아돌고부터 계산이 만만찮아졌다. 내 돈으로 내 집을 수리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원론적인 이치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집에 손을 대는 행위가 대단한 이득을 담보해 준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새집과의 경쟁은 미지수이지만 포기하기도 어렵다.  


수백만 채의 집들이 동시에 나이가 들고 있다. 집이 지어지던 시절이 청년기였다면, 리모델링 플래카드가 붙은 집은 이미 노년기에 접어든 것이다. 애초에 수백, 수천 세대가 집수리에 대하여 공동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꽤 머리 아픈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이제야 걱정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사람과 운명을 같이 하며, 사람의 운명을 흔들기도 하는 집.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도 하였지만, 언젠가 고민에 빠뜨리게도 할 수 있는 집. 그러한 집은 경제의 수단이 아니라 꽤 중요한 삶의 도구여서 대량으로, 하물며 동시에 지을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힘이 넘치는 청년 시절에 까짓 길의 높낮이가 무슨 대수였을까? 하지만 나이가 드니, 나도 집도 힘에 겨워진다. 아침 바람에 펄럭이는 “우리 아파트 리모델링을 축하합니다.;”는 문구가 왠지 부실한 내 몸인 양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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