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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Jun 20. 2022

아름다운 재생

도시와 건축을 말하다


논산시 강경읍으로의 여행이었다.  한번 가고 싶던 곳이었다. 일제 수탈기에 융성했던 도시로 근대건축 유산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인천, 군산, 부산에 비하여 수나 크기는 미치지 못하지만, 보존이  되어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작은 도시이고 아직 개발의 열풍에 휩쓸지 않았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1913년에 지어진 ‘한일은행 강경지점건물을 리모델링한 ‘강경역사관주변이 특히 돋보였다. 낱개 건물의 보존이기보다는 그들이 이루는 영역에 관점을  점이 좋았다.


관람에 머물지 않고 생활 영역이  점도 좋다. 보존과 재생, 하물며 개발까지 동시에 일어나는 현재진행형의 장소. ‘강경구락부라는 근대적 용어를 사용한 일대의 재생은 특산물인 젓갈과 함께  도시의 핵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흥미로운 곳은 호남선 연산역 주변이다. 그곳의 오래된 급수탑을 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  하나였는데, 정작 우리 일행은 역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시재생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역할이 떨어진 역사의 잔여 부지와 농협창고, 개인 사유의 밭들이  영역을 이루어 예기치 못한 장소를 만들고 있을 줄이야.


제일 먼저 눈에  것은 신발을 벗고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과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다.


판매와 관람 위주의 이른바 도시재생에서 좀체 그려내지 못할 그림인 동네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그것들은 놀랍게도 소량의 물을 매개로 하여 펼쳐지고 있다. 깊이 20센티미터 정도의 얕은 풀에서 아이들이 물방울을 튀기며 논다. 2~3 전만 하여도 서로 몰랐던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주위로 군데군데 유명 예술가들의 설치물들이 놓여 있었는데, 아이들은 힐끗힐끗 쳐다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한다.


흩어지는  사이로 재생된 창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이번엔 어른들이 바글거린다. 세련된 옷과 선글라스를  모습은 아무래도 여행자인 듯하다. 커피를 주문하는 행렬이 길지만, 사람들은 질서를  지키며 모처럼의 자유를 깨지 않으려는  표정이 밝다.  사이로 커피의 향이 은은하게 흐르고 창고의 높은 천정이 분위기에 한몫을 한다.


 다른 창고 안에서는 암흑 속에서 풍등(風燈) 날아다닌다.  아래에 물을 담아 반사되는 모습으로 유등(流燈) 동시에 연출해 놓았다. 마치 대구의 풍등축제와 진주의 유등축제를 한곳에 모아 놓은 , 어둠과 물을 매개로  기획력이 돋보였다. 아이도 어른도 환상에 빠져 ~ 하는 함성과 함께 사진으로 담기에 바빴다.


건축가로서 내가 놀란 점은 한적하고 평범한 장소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 기획의 영리함이다. 철도, 역사, 급수탱크가 시발점이 되었겠지만, 엉뚱하게도 물과 어린이를 끌어들였으니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s) 기차가 아니라 어린이와 물임이 틀림없다. 건축가의 디자인과 예술가의 설치물들이 장소의 품격을 더했을 것임은 물론이지만, ‘내가 잘났네.’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낡은 창고와 철도 시설물들과 어께를 맞추고 어울리려 했을 뿐이다.


돌아오는  안에서 나는 그곳의 도시재생을 ‘아름다운 재생이라 이름 붙여 보았다. ‘아름답다라는 말은 겉모습에 붙일 말이 아님을 알겠다. 특히 장소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이 자유를 느끼고, 새로운 사람들이 마치 오래된 친구와 같이 여겨질  어울리는 말이다.


아침 산책길을 폐선 부지에 덩그러니 남은 해운대역사 쪽으로 정했다. 내일은 송정역사 쪽으로 걸어볼까? 이 도시에도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는 도시재생의 장소들이 많다. 이번 지방 선거의 관점 중에도 도시재생이 있었다. 부디 그것들이  대단위 토목, 건축 사업을 의미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들이 깔깔거리고 어른들이 그것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소박한 장소로 환생하였으면. 영리한 건축가들의 빛나는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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