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장미가 아니지. 모든 꽃이 아련하다는 것은 착각. 멀리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숨 죽이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내 앞에 불쑥 서는 것이다. 제 크기를 감추지 않고, 색을 숨기기는 커녕. 순간 향기를 화~악 품어내는 도발의 극치다. 꽃의 천성이 그래서. 원근이기 보다는 밀착, 꽃과 나 사이의 거리를 굳이 두지 않는 것이 방법이라면 방법일까? 아련함을 앞세운 이 그림은 아무리 봐도 잘못된 꽃그림이다.
건축가 / 화가 /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