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더 뚜렷해지는 것들이 있다. 먼지에 휩싸여 눈에 띄지 않던 충장대로 인도에 도열해 있던 사철나무. 오늘 유달리 눈에 띄인다. 겨울비가 꾀죄죄하던 땟국물을 씻어 내기라도 한 것일까? 오늘따라 빛나는 나무. 나는 얼른 그것을 그려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호라. 이유가 다른 데에 있었네. 비와 안개가 나무의 뒷편을 의뭉하게 숨겨 주는구나. 배경이 숨으니 빛나는 나무. 생각한다. 존재감이란? 제 자신의 모습에 있다기 보다는.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들의 역할에 달려 있구나. 그렇다면 내 주변의 모습은? 또한, 나는 내 사람들에게 어떤 배경이 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