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해도 우영우, 거꾸로 해도 우영우. 오래전에 담아 두었던 ‘우영우 팽나무’를 그린다. 앨범에 담이 놓기만 했지, 저 영적인 것의 면목을 말해보기 시작한 것도 얼마전의 일이다. 나이가 조금의 통찰력을 만들어 주었다 할까? 말인즉, 겨울에 바라보는 나무가 ‘나무의 실체’에 더 가깝다는 것. 잎이 떨어지면, 비로소 나무의 과거이며 미래가 엿보인다는 말이다. 나무의 생명력이 잎을 달고 있을 때보다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들어 나의 벌거벗음이 자주 주위에 노출될 것은 뻔한 일. 위장의 힘을 잃으면 어쩔 수 없이 노출할 수 밖에. 그리하여 벌거벗음이 무서운 나는. 겨울나무가 늘 존경스럽다. 오래전, 주남저수지 청둥오리를 바라보고 올라갔던 동산의 팽나무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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