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민 Jun 02. 2022

영도 다리

부산을 말하다

그림 이종민


프롤로그 / 어떤 장소에서 겸허해져야 하는 것은, 기록의 미미함을 알기 때문이다. 터에 대한 이야기는 개별적 감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호의 관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는 상판이 ‘하버브리지’처럼 미려하지 못하고, 교각이 ‘골든게이트’처럼 날렵하지 못하여도 늘 그 다리 위에 서고 싶다. 다리의 난간에 설 때마다, “~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 라는 가수의 절규 보다는, 들고 나기를 반복하는 물의 섭리를 관찰하기 보다는, 인간과 자연과 세월이 뒤섞여 버무려진 여러 장면을 먼저 떠올려 보고 싶다. 교각을 휘도는 물살을 바라보면서 ‘욕망’, ‘소통‘, ‘추억’ 이라는 인간의 단어들을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자갈치 시장, 수리 조선소, 공사현장과 같은 주변의 치열함에 전율을 느껴보고 싶다.


모든 연육교는 욕망의 출발점이다. ‘절영’이라 이름의 아름다운 섬에 태고로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말을 키우며 물고기를 잡고, 밭을 일구면서 무시로 뭍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반면, 뭍의 사람들에게 섬은 환상과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서로의 욕망들은 연육(連陸)을 이룸으로서 해소됨직 하였을 터, 다리의 탄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하나의 소통을 얻고 다른 하나를 단절시키는 일이다. 같은 물살의 바다는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었다. 큰 배는 섬의 뒤편을 돌아 더 큰 항구로 접안해야만 했으니 이른바 ‘북항’으로 자연스레 무역과 산업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반면, 다리의 남쪽은 여전히 태고로부터 이어져온 고기잡이와 사람들의 잡다한 일상이 영위되는 어항으로 남았으니 단절임에 분명했다.


영도다리가 빛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소통하려는 의지에 있었다. 인간의 욕망과 호기심이 거기서 그칠 일이 아니었으니...... 끊어진 바닷길을 통해 보려는 의지, 그것이 도개(跳開)라는 기막힌 방법으로 실현될 줄이야. 1934년의 일이다.


기묘한 광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부산 사람들이 이유 불문 중단된 도개의 재현에 동의한 것은 그 장면에 대한 치유치 못하는 집착이며 깊은 애정이다. 추억의 재현은 소통의 유효한 매개이니 영도다리 주변이 여전히 펄펄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해 보니, 섬에서 자란 나의 욕망도 영도다리 밑을 통과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로 나는 수차례 여객선 갑판에서 다리의 밑과 속내를 올려다보았다. 다리는 다부지고 모질고 튼튼한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린 주먹을 야무지게 쥐었다.

부산에 터를 잡은 후, 명절 때가 되면 우리 조무래기들은 엉성한 낚싯대와 망태 하나씩 매고 다리 밑으로 갔다. 명절에 고등어라니, 우습지만 우리는 눈먼 고기를 한 소쿠리씩 낚아 올렸다. 그 즈음이면 어른들이 삼삼오오 다리 밑으로 느긋한 걸음을 하였는데, 저마다의 미래를 점집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묻곤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한약과 건어물 냄새를 꼭 통과해야만 하였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난 후, 바로 그 장소에 건축가인 내가 집 한 채를 설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도면을 그리는 내내 인연에 감사하고 추억에 즐거웠다.


지금의 영도다리 주변은 복합적이다. 과거의 흔적이 남아 여전히 추억의 장소로서의 명성을 유지하지만, 거대자본이 첨단의 건물을 건설하고 있기도 하다. 당국에서는 해안을 정비하는 등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반면 원형 보존의 목소리도 드세다. 목하 이 지역이 개발과 보존이라는 이념의 홍역 속에 또 다른 욕망이 쉼 없이 꿈틀대고 있다는 말이다.


도시는 소멸과 생성을 반복한다. 기실 ‘보존론자’에 가까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도시의 현대화다, 중요한 것은 그 개발 또한 역사의 애환 속에 또 하나의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 그러므로 주장의 옳고 그름에 앞서 의식의 소통과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올바른 소통은 그릇된 욕망을 제어한다. 그 위의 개발이라야 타당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매일 오후 2시가 되면 도개 의식이 진행된다. 그 잠시의 시간에 섬은 단절되고 다리 밑으로 키 높은 배가 지나며, 도시의 사람들은 잠시 가쁜 숨을 멈추고 선다. 이미테이션이라도 좋다. 지난날 영도다리의 ‘연육’과 ‘도개’가 잘 버무려져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고, 후손인 우리가 그 추억 하나를 확인해 보려 꽤 설득력 있는 재현을 이룬다.


영도다리 주위엔 여전히 욕망과 소통이 넘실댄다.

이전 12화 편백숲으로 / 법기수원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