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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May 30. 2022

매축지마을에서

부산을 말하다


오래된 마을을 탐사하면서 사람들이 내게 던지는 질문은 대게 이렇다. 건축은 무엇입니까? 집이란 어떤 곳입니까? 때론 당황스럽다. 건축가의 입장을 묻는 것이고, 건축가는 늘 새롭고 현대적이고 멋진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전제가 숨어있다. 대체적이고 건축가가 다루는 건축은 새 것이고 현대적인 것이다. 간혹 오래된 건물을 리노베이션 한다거나, 전통의 방법을 통한 고전적 형태의 건축을 재현하는 일에 관여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건축가의 이름을 거는 경우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건축가가 없는 건축이 더 많다. 물론 건축이 제도적으로 통제되기 이전의 집이 대부분이지만. 아무튼 도시의 곳곳에 홀로 혹은 집단으로 남아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건축가는 그런 집에 대하여 더 연민을 느끼고, 오늘 나의 경우도 그렇다. 집의 물리적 느낌이 아니라, 장소와 추억이 버무려져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정서 때문이 아닐까? 더 진지한 건축가들은 삼삼오오 모여 누추한 동네를 견학하고 실측하고 연구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들은 그것을 건축이라 여길까? 혹시 자신이 그곳에 다시 건축할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아무튼 건축이란 꽤 복잡한 영역이다.


부산에도 그런 곳이 많다. 예전엔 대부분의 시가지가 그랬겠지만, 어찌어찌하여 지금까지 보존된 곳들. 감천마을, 안창마을, 매축지마을, 비석마을, 흰여울마을. 어쩌면 지자체마다 그런 마을 하나쯤은 자랑으로 삼고 있고, 대부분 문화마을이라는 별칭을 지닌다.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여러 이해가 얽히고 수많은 곡절이 뒤섞여 있겠지만, 방문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추억과 옛 풍경들이 아련하고 혹은 자신의 삶과 다른 풍경들이 신기하기도 하여 기웃기웃 들여다본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돌연 건축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받고 그만 당황하고 만다.  


집이란 무엇인가? 좀 더 철학적으로 말하여“집은 하찮은 벽돌과 나무둥치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의 작은 우주가 형성된 것이다.”이라고 답하고 싶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우주란 내 눈과 가슴과 상상 속에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더 큰 집을 일컬어 작은 우주라 한 것이 그리 틀린 말도 아니리라. 모든 사람의 희로애락이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일생의 대부분이 그것의 획득과 유지와 발전에 쏟고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을까? 건축은 그런 집을 만드는 행위이다. 그래서 새롭고 현대적인 것만이 건축인가 라는 의문은 다소 빗나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도시계획이 도시를 만들어 간다는 것도 틀린 말이다. 도시는 건물 하나하나의 낱개가 모여서 형성되는 것으로, 그 안에 작은 우주들이 제각각의 얼굴을 하고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건축가가 없는 건축을 포함하고 있으니 좀체 통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시계획은 매우 계산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선택하고부터 감히 남의 우주를 깨는 방법을 천연덕스레 배웠고, 사유(私有)만이 정의인 것처럼 살아왔듯이 도시계획 결정 이후 집의 운명은 처절하다. 오래도록 유지된 질서가 도시계획이라는 잣대로 너무 편리하게 재단된다.  


부산은 거대도시이며, 그런 이유로 좀 더 큰 그림으로 도시를 다루려는 행정가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만은 현대 도시의 질이 너무 시각적으로 평가된다는 데에 있다. 잘된 도시를 이야기할 때에 원주민의 입장에서 삶의 질이 평가되는 것은 불행하게도 늘 그 이후의 문제이다. 더군다나 도시의 목표가 국제적 면모의 달성에 있다거나 나아가서 관광 도시 운운하겠다면 그러한 관점은 더더욱 극대화된다. 이 도시도 예외일 수 없다.


나는 마을이 곧 사라질 운명임을 예감하였다. 수많은 우주와 함께..... 건축가가 없는 건축들이 모여 있는 마을에 서면, 늘 불가항력에 부딪히고 불편하다. 기껏 건축이 새롭고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깨닫는 것이 고작이고, 문득 애절함에 사로잡힌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남긴다. 이곳에 대한 기억의 보존에 일조하는 방법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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