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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May 31. 2022

편백숲으로 / 법기수원지

부산을 말하다

그림 이종민


법기수원지를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수원지 아래의 편백숲의 크고 너른 품에 안겨 찌든 생활을 잠시 잊어보려는, 그야말로 힐링을 위해서다. 숲은 지친 나를 아버지의 손길로 쓰다듬어 준다. 숲이 이루는 음영 아래에서 코를 벌렁거리면서 가슴을 화악 펴고 강아지처럼 돌아다닌다. 그러다 잠시 정신을 차리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으니, 그건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가? 와 같은 물음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담아가는 마음의 선물이다. 


행정구역은 양산시에 속하지만, 부산 사람들의 식수를 공급하는 수원지의 권역은 1930년 일본강점기에 축조된 댐과 그 아래에 조성된 600여 그루의 방재림을 포함한다. 댐이 축조된 후 줄곧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다가 2011년에 개방되었으니, 근 80여 년 만의 일이다. 편백과 히말라야시드로 조성된 방재림 또한 긴 세월 동안 마치 처녀지처럼 숨겨져 있었으니 너도나도 그 모습이 가히 궁금했다. 


정문을 통하여 숲에 들면 누구나 “와~‘하고 외치게 된다. 흔히 볼 수 없는 장관과 마주치게 되기 때문이다. 설령 사진 같은 자료로 예상하고 왔더라도 감탄은 결코 다를 수 없다. 눈은 그렇다 치고 코로 맡게 되는 서늘한 내음과 숲이 만들어 내는 음영의 장엄한 분위기가 피부를 뚫고 가슴으로 파고들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리라.


어이없게도 나의 불만은 이 숲을 도저히 사진의 한 장면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늘을 우러러 가물가물하고 먼 잎사귀를 찍든지, 나무의 허리로 눈을 옮겨 곧고 힘찬 줄기만을 담아내든지, 그도 저도 아니면 아예 바닥으로 시선을 낮추어 거미줄처럼 땅으로 스며드는 뿌리의 선들과 그 틈새로 땅에 붙은 음지 초본류의 생명을 카메라에 담는 정도가 한계이니 말이다. 그건 곧 숲이 일상적인 나의 범주를 벗어날 만큼 크고 높다는 이야기이다. 막상 조리개를 열고 보면, 어느 화각에서나 숲의 거대함에 비추어 사람의 존재나 흐름은 그저 하나의 점에 불과할 터이니 그만 기가 죽는 것이다. 


숲을 지나 댐으로 오르려는 길은 높고 길다. 그러나 오르지 않고 내려다볼 방법이 없으니 모두는 둑의 경사를 가로지르는 기하학적 사선을 따라 줄줄이 오른다. 설령 길의 끝에 수령 130년이 된 반송이 상징처럼 서 있지 않더라도, 목표를 두고 오르는 사람들은 활기찰 터이다. 비록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자연과 더불어 하나의 불변의 물체가 되어 한 장소를 이루는 것이다.


124개의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재래종 잔디의 담백한 선형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그 평온에서 가끔 몸을 밀착한 연인의 모습이 나타나곤 하여 적요를 깬다. 그러면 나도 잠시 오르기를 멈추어 숨을 돌리고 뒤를 돌아보게 된다. 숲의 허리춤이 비로소 한눈에 들어오고 숲의 크기가 짐작된다. 역시 올라야 내려다보이는 것이다. 셔터를 부지런히 눌러댄다.


드디어 계단의 끝에 다다르면 노송의 가지들 사이로 잔물결의 일렁임이 눈에 든다. 물의 빛깔은 계절마다 다를 것이다. 반추되는 산의 색 또한 그럴 것이니 이곳은 계절을 달리하여 와 봄 직하다. 예상외로 주위의 산이 작고 아담하니 어디서 이 많은 물이 모여들었을지 의문이다. 물을 모은 것은 숲일지니 자연의 힘이 대단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이곳에 올라 산과 물과 제방과 방재림을 한눈에 들여놓고 보면, 무릇 인간이 이루려는 문명의 역사와 삶의 편린들이 한눈에 보이는 듯 숙연해진다. 자연과 인공. 둘의 경계는 확연하다. 산과 물을 잉태시킨 곳은 자연이고, 그 산을 막아 물을 저장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이루려는 것이 자연의 그것에 어떻게 미치랴. 그럼에도 인간은 종교를 믿고 과학을 발전시켜 자연에 도전한다. 그것이 자연과 조회되었을 경우에 인간 또한 위대한 존재가 되느니 그게 문명의 발전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요즘처럼 ‘에너지의 무분별한 사용’, ‘지나친 자연의 훼손’, ‘쓸데없는 자원의 낭비’와 같이 우리가 모두 고민해야 할 숙제를 남겼다면 문제는 다르다. 자연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인간은 늘 미완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느닷없이 그 오만을 경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화되어야 옳은 것인가? 무엇보다도 개발이란 명목으로 지나치지 말아야할 것이 궁극의 진리이다. 그것을 거슬렀을 때에 자연은 사람에게 여지없이 재앙을 주었으니 답은 이미 있는 것 아닌가? 방재림이 묵묵히 말한다. 


모든 숲에 들면 자연이 주는 혜택에 감사하게 된다. 더욱이 이 권역에서와 같이 자연 속에 만들어진 인공의 의미를 생각하다 보면, 인간성의 오만을 반성케 되고 올바른 삶의 태도를 다지는 것이다. 법기수원지에 들면, 이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든다 할까? 그런 장소가 삶의 주변에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숲으로 모여든다.


하지만 나는 이곳이 딱 이 정도였으면 한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면 숲을 망치고 물을 더럽힐 것이니, 이즈음 해서 생각 있는 사람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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