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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펀펀뻔뻔맘 Dec 14. 2016

내 부모가 나에게 그랬듯이

밤까기 그 속에 숨어있던 의미

올 해 내 딸은 감기를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 중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안 다녀

그런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논리라면  집에만 있는 아이들은 다 안 아퍼야 하는거고 기관에 다니는 아이들에만 감기가 걸려야하는 건가?

어린이집만 안다닐 뿐이지 문화센터며 학원이며

키즈카페와 심지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데 ...

이건 순전히 내 공이고 내 노력이고

내 자랑이기 때문에

어린이집을 안 다니는 공으로 돌리기 싫다

난 생색내기 좋아하는 뻔뻔한 엄마니까~

그런데...

주말부터 딸 아이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코가 막힌 맹맹한 소리..

콧물도 기침도 열도 없고 코만 막혀있었다 소아과에 갔더니 감기 초기증상이라며 증상이 약하다고 걱정말라고 하시지만 증상이 약하고 강하고를 떠나  아이가 아프다니 맘이 좋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

먹고 싶은 걸 물어보니  먹고픈게 없다는 딸

큰 맘 먹고 다 사준다고 해도 집에 만 가자고 한다

과자?빵?아이스크림?사탕?

구체적으로 제시해도 안 먹는다고만 하는 딸..

입맛도 컨디션도 별로인거 같은 아이 손 잡고 집에 오는데 과일가게 앞에서 아이가 밤을 사달라고 한다

밤?????밤이라고???

한번도 밤을 사달라고 한 적이 없던 아이라 의아해하며 밤 오천원 어치를 사왔다

그리고는 인터넷에 밤 맛나게 삶는 법을 검색 해 거기에 나 온 시간과 분까지 딱 맞춰 밤을 삶아

반으로 잘라 숟가락으로 살살 파 아이에게 주니 덥석덥석 잘도 받아 먹는다

너무나 잘 먹는 딸 아이 때문에 밤을 까기 시작했다

먹는 속도가 까는 속도보다 빨라도 오물오물 잘도

먹는 아이의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갑자기 아빠에게 전화를 해 달라는 딸아이

"아빠가 벌어 온 돈으로 밤을 샀어요 아빠최고!!사랑해요"

말하는 딸 아이를 보며 '내 손에 굳은살이 생겨도  

이 밤은 다 까고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밤을 엄청나게 먹고  약기운에 자는 아이의 등을 토닥거리다 문득 옛 생각이 났다

그 시절 엄마가 밤을 삶으면 아빠는 그 밤을 까 밥 그릇에 넣어 아랫목에 두셨다

학교를 다녀 온 나는 숟가락으로 살살 파 먹는 파슬한 느낌의 밤이 좋았는데도 아빠는 기어코 깐 밤을 내 입에 넣어주셨다

그런 아빠가 돌아가시고 또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일주일 내내 일하느라 피곤했던 엄마가 주말이라고 쉴 법도 한데 밤을 삶아 까 놓았고

 난 아무 생각없이 그 밤 몇 개를 집어 먹고는  방으로 쏙 들어갔다

나에게 까져있는 밤은 당연한 거였고  고마움 따위는 없던  간식이였다


퇴근 후 저녁 먹고 까 놓은 밤을 먹던 남편이

어릴 때 집 뒤 산에 밤나무가 많아 밤을 질리도록 먹은 이야기를 하더니  항상 아버님이 밤을 까 놓아 주셔서 직접  까 먹어 본 적도 없다고 한다

하긴...예전 시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길

 남편 군대에서 휴가 나오는 날이면

밤을 사다 직접 삶아 까 놓고 남편 좋아하는 만두까지 본인이 직접 빚어 주셨다는 이야기 하신적이 있는데 밤을 한번도 까 먹어 본 적이 없다는 말 과장이 아닐거

남편 역시 밤은 마음 껏 먹는 간식거리에 불과했고

껍질이 까져 있는 밤 역시 자연스러웠던거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어 직접 까 보니 이게

귀찮고 은근 손이 꽤 가는 작업인데 중요한

그 노동의 티가 안난다

밤 껍질과 밤 속살이 붙어 무뎌진 칼 날을 중간중간

닦아야 하며 손에 묻는 밤도 중간중간 닦아줘야 하는 귀찮음과 불편함

겉 껍질을 깔 때 조심 속 껍질을 깔 때는 더 조심조심

밤이 으깨지거나 부셔지지 않게 까야 하

한 자세로 까다보니 어깨와 목도 뻐근하고

재미가 없다(아이가 잘 먹어 행복하고 좋은거랑 별개의 지극히 내 개인적인 재미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엄지손가락도 아프고 팔 목에 은근 힘이 가는게 은근한 노동력과 끈기가 필요한 밤까기!

그냥 반을 뚝 잘라 숟가락으로 파 먹거나 이로 긁어내어 먹어도 될 것을 우리네 부모님들이

왜 그리 이쁘게 까 그릇과 접시에 담아 주었는지

이제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알게 되었다

밤 하나를 먹더라도 예쁘고 귀하게 먹이고 싶고

맛나게 먹이고 싶고 잘 먹고 좋아하니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마음

언제든 먹고 싶을 때 밤이 담긴 그릇에 뚜껑만 열어 마음껏 먹으라는 마음

작고 작은 밤 한 톨에 정말 많은 부모의 마음이 들어가 있었다


부모가 되어야 그 마음을 안 다는 뻔하고 흔한말

그 말이 오늘따라 맘에 와 닿고

돌아가신 아빠를 더 생각나게 한다

몇 십년 뒤 당신처럼 나도 내 딸을 위해 밤을 깐다며

입 속에 내가 깐 밤 한 알 넣어드리고 픈  그런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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