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을까 ?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최근 크리스티 경매에서 9백억 원대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은 다시 한 번 세계 미술시장의 거대한 자본 흐름을 실감하게 한다. 피카소는 7백억, 세잔은 5백억 원대의 낙찰가를 기록했다. 한국의 김환기 역시 뉴욕 크리스티에서 123억 원이라는 한국 미술 경매 사상 두번째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숫자들은 단순히 비싼 예술 작품의 가격을 넘어, 현대 미술시장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대한 지표다.
현재 전 세계 미술시장 규모는 약 80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뉴욕, 런던, 베이징이 주도하고 있으나—지난 20년 동안 반복되어 온 ‘미술시장 개척 10년 주기설’을 적용해보면—홍콩에서 시작된 개척시장 흐름이 최근 몇 년간 서울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프리즈 서울은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다. 첫 해에는 공식적으로 거래 규모를 발표했지만, 이후에는 철저한 비공개 기조를 유지하며 더욱 ‘VIP 중심’, ‘비공식 루트 중심’의 특성이 강해졌다. 실제로 작품 거래의 상당수가 페어 부스가 아닌 호텔의 VIP 룸에서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이는 한국 시장이 글로벌 컬렉터의 관심을 받는 동시에, 아직 ‘투명성·제도성’에서는 불안정한 과도기적 상태에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1. 예술이 자본과 결탁한 이유: 미술품은 부자들의 마지막 ‘담보물’
예술은 오래전부터 자본과 긴밀하게 결탁해왔다. 이는 단순한 의혹이나 음모론이 아니라 시장 구조와 자산 운용 방식이 명확히 설명하는 사실이다.
2. 미술품이 자본의 ‘안전지대’가 되는 이유
1) 국경을 쉽게 넘나드는 고가 이동자산
금이나 암호화폐와 달리 ‘작품’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다.
2) 가격이 투명하지 않은 대표적 사치재
동일 작가, 유사 작품이라도 거래 과정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이 불투명성은 동시에 자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
3) 세금·재산 공개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는 비공개 시장 존재
프라이빗 세일, 비공개 딜, 내부자 거래가 존재하며 국가별 규제가 달라 회피가 가능하다.
4) 장기 보유 자산으로 가치 상승률이 높다
상위 작가들의 경매 낙찰가는 지난 20~30년간 꾸준한 우상향을 기록했다.
이 모든 특성은 미술시장을 부자들의 마지막 자산 놀이터 혹은 자산 헷지 수단으로 만들어왔다. 실제로 각 대륙의 바젤 아트페어 VIP 오픈일에는 전 세계의 자산가·딜러·갤러리스트·국제 투자자들이 모여 사실상 “미술계 Davos Forum” 같은 비공개 비즈니스가 이루어진다.
3. 개척시장 이동: 홍콩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흐름
홍콩은 오랜 기간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였다.
그러나 아래 요인들이 시장을 흔들었다.
1)중국의 정치·사회적 규제 강화
고액 미술품에 대한 통제 강화
2)상속·자산 이동에 대한 감시 확대
3)언론·시장 자유도의 축소
이로 인해 글로벌 딜러들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아시아 거점을 탐색하게 되었고, 그 대안이 바로 서울이었다.
서울이 갖는 경쟁력
-안정된 민주주의와 법·금융 인프라
-국제적 도시 이미지 상승
-한국 문화(K-콘텐츠)의 세계적 영향력 확대
-미술품 구매력 증가(40~50대 신흥 컬렉터 등장)
-프리즈·키아프 동시 개최로 인한 글로벌 네트워크 유입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 완성된 국제 미술시장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투명성의 부족이다.
4. 한국 미술시장이 직면한 문제: 중국 베이징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한국 미술시장의 불안정성을 거론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바로 비자금·비공식 거래·비공개 자금 흐름이다.
한국의 문제는 다음 두 가지가 결합되어 발생한다.
① 세무 이슈가 아니라 ‘비자금 운용의 비밀주의’
-기업의 비공식 자금 운용에 작품이 활용되는 경우
-고가 거래가 시세보다 높거나 낮게 이루어지는 경우
-명의자 혹은 실제 구매자가 다를 수 있는 거래
이러한 구조는 미술품 거래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어렵게 만든다.
② 갤러리·페어·딜러의 구조적 폐쇄성
-거래 기록을 공유하지 않는 문화
-아티스트 가격 정찰제의 부재
-공시 기준이 없는 프라이빗 세일 문화
-외부 검증이 어려운 ‘VIP방’ 중심 거래
이 모든 요소는 과거 베이징 시장이 급속히 성장했다가 규제·단속·검열로 인해 단기간에 붕괴한 사례와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
5. 그럼에도 서울은 기회를 갖고 있다
서울이 갖춘 장점은 결코 작지 않다. 만약 한국이 아래의 조건을 충족시키게 된다면,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가 되는 것은 현실적인 목표다.
필수 조건 1. 투명한 거래 시스템 구축
-작품 거래 이력의 데이터베이스화
-갤러리·작가·페어의 등급 공개
-가격 추적 시스템과 표준화된 시세 정보 제공
-위작 감정 및 출처 공개 의무화
이 과정은 새로운 시장의 신뢰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필수 조건 2. ‘한국적 미학’의 글로벌 기준화
한국 미술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한류의 영향력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의 키워드 속에서 한국 미학이 어떤 기준을 만들어낼지가 중요하다.
-단색화 이후의 새로운 한국적 관점
-동양적 미감과 현대적 기술의 결합
-K-컬처와 결합한 시각 예술의 확장성
-AI·디지털 아트·실험예술의 서울 중심 네트워크
필수 조건 3. 국제적 유통 구조로의 업그레이드
-국제표준 계약서 사용
-소비자 보호 체계
-작가 로열티 제도
-해외 진출 인프라(트레이드, 레지던시, 페어 참가)
5. 결론: 서울은 지금 ‘가능성의 문 앞’에 서 있다
서울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투명성–신뢰–데이터–국제규범–한국적 미학,
이 다섯 가지 축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서울은 홍콩이 흔들리며 생긴 공백을 빠르게 채우고 있으며,
이미 국제 갤러리, 딜러, 컬렉터들이 서울을 다음 시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한국도 베이징처럼 단기간 성장 후 급격한 추락을 경험할 위험성이 있다.
미술시장은 단순히 작품을 사고파는 산업이 아니라
문화, 자산, 도시 경쟁력, 국가 브랜드가 결합된 거대한 종합 생태계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글로벌 기준을 갖춘 ‘투명한 미술시장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한국 미술시장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