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길목에서, 나는 다시 묻는다!

예술적 삶을 꿈꾸며

by 예술짱


“예술은 삶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 <오스카 와일드>


예술을 한다는 것, 작가로 산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붓을 들고 캔버스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나는 그 길을 걸어왔다. 때로는 작가로, 때로는 기획자로, 때로는 정책의 현장에서.


한국미술은 지금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무분별한 키치의 늪에서 방황하며 허우적거리고 있다.

화려함과 대중성에 기대어 예술의 본질을 잃어가는 풍경 속에서,

나는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스위스 바젤, 홍콩, 마이애미의 3대 바젤아트페어(2018년 당시에는)를 넘나들며

예술성과 상업성의 경계를 분석했고, 기획자로 확장된 영역에서 냉정하게 평가하고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의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보다 객관적 판단과 평가들이 필요했다.

외에 아모리쇼, 프리즈, 웨스트번드, 상하이 021 등을 탐방하고 상업성과 대중성이 예술성과 어떻게 다른지 분석했다.

베니스, 카셀, 뮌스터의 미술행사와 유럽 그랜드 아트투어, 뒤셀도르프 인근 홈브로이히, 가소미터, 퀴페스뮐레 미술관과 랑엔파운데이션, 미디언하펜의 도시재생과 졸페라인 탄광예술촌, 베를린 비엔날레, 각 도시의 내셔널갤러리, 뉴욕의 모마와 메트로폴리탄, 소호첼시의 갤러리 빌딩과 작업실들, 구겐하임, 디아비컨미술관, 휘트니미술관과 비엔날레, 베이징 798, 헤이차오, 송좡예술촌의 미술관과 작업실들, 상하이 모간산루 M50 예술촌 등 수많은 행사와 예술촌, 집단화된 작가 작업실을 직접 방문하고 인터뷰와 교류를 동시에 해왔다.

베니스와 카셀, 뮌스터의 미술행사에서는

예술이 도시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목격했다.


뉴욕의 소호와 첼시, 베를린의 비엔날레,

상하이 M50과 베이징 798의 예술촌까지,

나는 수많은 작가의 작업실을 직접 방문하고,

그들의 숨결과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그 여정의 끝에서, 나는 하나의 결심을 했다.

한국에도 제대로 된 예술가 집단화 시설과

지속 가능한 아트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것.


지자체에 예술촌을 제안하고,

7개 갤러리와 함께 KAGA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작가로서의 꿈은 글로벌 무대였지만,

국내 시스템의 한계 앞에서 나는 기획자의 길을 자처했다.

그 선택은 미술계, 동료들에 대한 희생이었고, 동시에 도전이었다.

그러나 진정성 있거나 없는 사람들과의 협업은

생각보다 더 많은 불안과 좌절을 안겨주었다.


“실패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채로 머무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예술계의 시기와 질투에 지친 마음은

지자체 문화예술 정책이라는 또 다른 세계로 향했다.

그곳은 더 복잡하고, 더 많은 스트레스를 요구했지만

때로는 더 큰 보람을 안겨주기도 했다.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예술정책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청렴하여 오직 지역발전을 위한 고민과 실행을 통해 존경심을 갖게하는 이,

비선과 재선에만 몰두하는 이들 사이에서 극과 극을 경험하며 나는 예술의 가치를 지키려 애썼다.


이제 나는 다시 길목에 서 있다.

두 갈래 길이 나를 부른다.


하나는, 아직 젊은(내 생각에는) 나이에

예술행정을 계속하며 정책의 현장을 지키는 길.

다른 하나는, 그동안 미뤄왔던

미술시장 비즈니스와 예술가 집단화를 위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는 길.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선택은 곧 존재의 증명이다.” <장 폴 사르트르>


예술행정은 타의에 의해 주어진 길이었지만,

비즈니스는 내 안의 불꽃을 지피는 일이다.

나는 지금, 그 불꽃 앞에서 숙고하고 있다.

어떤 길이 더 옳은가가 아니라,

어떤 길이 더 나 다운가를 묻고 있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

그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예술로 증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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