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어디일지 가늠되지 않는 먼 지평선과 광활하게 펼쳐진 캔터베리 평원을 보면
가만히 서 있어도 앞으로 내달리는 듯한 자유의 속도감이 느껴진다.
그 압도적인 개방감 앞에서 히치콕이 말한 '선명한 호라이즌이 주는 행복감과 창조력'이 떠올랐다. 거대한 자연앞에서 내가 아주 작아지는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그 거대함과 하나가 되는 듯한 시원함.
이 막힘이라는게 없이 뻥뻥 뚫리는 자유의 기운이라는 걸 우리는 얼마나 갈망하면서, 또 얼마나 얻기가 힘든지.
내 인생도 좀 툭 트였으면 좋겠다. 하고 쓸쓸하게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갈망을 한 켠에 품고 살았더니, 혼자 여행이라는걸 처음으로 하게 된다. 새천년의 옛 도시로.
하지만 평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고개를 이리 돌려도 산, 저리돌려도 산. 의외로 답답하지는 않다. 사방을 둘러친 나즈막한 산들이 주름진 담요처럼 감싸 덮어주는것이 매우 포근스럽다. 그리고 곧, 이 역시 자유의 기운이라는 걸 알게 된다. 아기가 요람에 누워있어도 자유를 느낀다면 경주에서의 지금 이런 종류의 기분이겠지. 기억력아 일해라. 움직일 수 없는 몸을 버둥거리며 세상 따뜻한 표정의 어머니만을 바라보고 있는 6개월배기 아가가 되자. 그 눈으로 엄마의 몸과 같은 무덤의 능선을 몇 시간째 바라보자.
풀어주는 경계선과
품어주는 경계선.
이런 귀한 풍경을 눈에 담고도 뭐 하나 내 놓지를 못한다면 그것은 대역죄다.
왕가의 죽음에 억지로 동행되지 않으려면, (무덤을 저리도 크게 만든 것은 다 데리고 가려는 심산이 아니더냐)
뭐든 써 내야 했다.
엔터를 치자, 저승에서 잡으러 오신 분들이 스르르 사라지셨네. 겨우.
살았다. 휴.
근데 사자 저분들이 왜 다시 오시지?
이게 부족하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