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중에 오랜 시간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다큐멘터리를 찍어오는 아이가 있는데, 너무 오랜 시간 그렇게 지내다 보면 가끔 숨구멍 풀고 싶을 때가오고, 그럴때 가끔 나에게 카톡을 보내온다. 나는 딱히 깊이가 없는 사람이라, 나랑 얘기를 하다 보면 물꼬가 반대방향으로 훅 트인단다. 하여간 나랑은 참 반대스럽고 행동파적인 파워풀 스파이스걸스 같은 아이다.
후배 : 선배! 찻집 왔는데 이 찻잔이 한 세트에 20만 원이래! (사진 보여줌) 정말 아름답지만 좁은 세계! 이거 억압된 여성성의 표현이라고 하면 꼴페미라고 욕먹을까?
나: ㅋㅋ너가 찻집 주인한테 그 주제로 이겨먹고 찻값 안 내게 되면 내 인정할게.
후배 : ㅋㅋㅋ 쇼미더머니도 아니고 디스 한다고 돈 주는 데가 아닌데 여기는.
나 : 근데 잔 없으면 홍차를 어떻게 마시려고? 너 그거 요강에다 부어 마신다고 생각해 봐. 암만 소독한 요강이라고 해도 못 마실걸.
후배는 진짜는 무엇이며 가짜는 무엇인지에 오랜 시간 질문해 온 사람이고, 이제는 무엇이든 이건 가짜일까 진짜일까? 판단하지 못하면 잠을 못 자는 지경에 다다랐다. 매 순간이 해석의 여지들이고, 대부분의 것들이 숨겨진 아픔의 상징인 것이다. 이 후배가 나를 날티나는 인간으로 봐준 것이 참 감사할 정도로, 솔직히 나도 더럽게 쓸데없이 무거워지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마치 심해의 구조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내딴에는 그 정도가 심해였다) 그러다가 심해를 헤매던 나 같은 아이를 눈 앞으로 만나게 되자, 뽀르르 물 위로 떠올라버렸다.
물론 의미를 찾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는 능력!!!! 이것이야 말로 참 어려운 것 같다. 아니, 어렵다!! 그냥 어렵다!! 그것이 결국 부표가 되어 적당히 성게와 전복을 안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다.
말하자면, 후배가 잔뜩 무겁게 찻잔과 억압된 여성성을 연결 짓는 카톡을 보내지 않았다면, 나도 찻잔이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감사해라 따위의 설파도 하지 못했을 거다.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면서 걸고 있는 기대에 부흥하려고 반대급부에서 쥐어짜 내 본 말이었지, 늘 내가 그렇게 눈부신 가벼움과 순수함으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고백이다. 이토록 상호작용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보는 나의 존재다. 우리가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서로를 비추며 함께 변해가는 관계의 신비인 것 같다.
그러라고 모아놓고 지지고 볶게 내버려 두시는 거겠지.
차와 찻잔을 사랑하는 사람은 찻잔에 담긴 차를 전등이나 햇빛에 비쳐보며 빛이 잔을 뚫고 들어오는 투명성을 즐긴다. 얇으면서도 강도가 높은 기술력에 대한 찬사다. 대개 그런 찻잔은 립 라인의 곡선이 매우 섬세해서 입술에 대자마자 실크같은 촉감을 느낄 수가 있다고한다. 잔에 그려진 꽃잎하나하나도 피어나는 중인 역동성을 느끼고, 손잡이의 안정감과 두 손에 담았을때 쏘옥 들어오는 볼륨감을 사랑하신다. - 우리 사무실에 자주 오시는 법무사 담당자분이 커피와 홍차변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