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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아는 사람 만나기

by 잡귀채신

세상이 흉흉한 것과 두려움에 떨면서 길을 걷는 사람과는 의외로 인과관계가 없다. 온천지에 간디1 간디2 간디3 으로만 구성된 평화 끝판왕의 세상이 와도 덜덜 떨면서 걸어 다닐 사람들이다.

왜 그러는 거냐고? 혹시 아는 사람을 길에서 만나게 될까 봐 그러는 것이다. 친한 사람 말고, 그냥 아는 사람 말이다. (전 세계를 탈탈 털어봐야 친한 사람 숫자는 손에 꼽히고 아는 사람도 물론 손에 꼽히지만) 특히 오래 살았던 동네 라면 증세는 심해진다. 내 투병담을 한번 들려 드려 보겠다.

발병하기 직전 어느 여름날, 나는 메로나에 푹 빠져 앞에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 나고 자란 동네의 길바닥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날씨는 또 어찌나 더운지, 메로나가 입에도 턱에도 목에도 흐르고 난리가 났는데 다 못 먹고 녹아 버릴까 봐 급하게 먹다 보니 머리가 다 띵했다. 그때 누군가 내 정신머리를 차리게 해 주셨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너무 많이 커서 못 알아보겠네~"

엄마의 친구이자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누군가의 모친 되시는 분이었다. 아뿔싸. 이제 곧 서른씩이나 되는 사람의 실상을 보여드릴 필요는 없었는데. 어머님 안구에게 죄송했다. 동네가 좁은 탓을 하세요. 끝까지 티 내지 않고 예의를 지켜주신 어머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하지만 어머님! 양심에 손을 얹고 그날 저녁, 자녀분께 무슨 이야기를 전하셨습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셨기에 자녀분께서 SNS 친구신청을 거절하는 것입니까.


그 뒤로 나는 강남 한복판을 걷는 것보다 동네 길을 걷는 게 더 힘들어졌다. 사서 집에 갈 때까지 조금만 참지 왜 그걸 길에서 꺼내 먹고 자빠졌을까. 차라리 더위사냥이나 빠삐코였으면 어땠을까. 별별 생각에 괴로웠다. 괴롭다면서 어제도 메로나를 사 먹는 나는 무얼까. (PPL 아님 주의)


그래서 말인데,

불안한 눈빛으로 소심하게 주변을 흘기며 걷는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게 도와주는 걸까?

괜히 또 모르는 척 쌩깠다고 싸가지 없다는 2차 공격을 당하면 나는 재기불능 할지도 모르는데?


가끔 길에서 만나 우아하고 밝은 미소로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사람들을 본다. 너무 좋아 보이고 부럽다. 내가 개라서 꼬리가 있었으면 엄숙한 얼굴을 하고도 흔들어대는 꼬리 때문에 다 망쳤을 거다.


아니, 그런데 뭘 망친다는 거지?


그래, 거지꼴을 하고 있더라도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반가워하고 마련다. 트라우마도 사실 귀찮다. 뭐 어때, SNS는 그냥 안 하면 되는 일. 친구신청거절? 어차피 몇 없던 친구 숫자 아이고 의미 없다. 쉽고 간단하다.


여러분들은 '길에서 아는 사람 만나기' 그 어려운 걸 잘도 해내는 사람일 테지?


브런치 스토리를 눈팅만 할 때부터 생각한건데, 이곳 독자 분들은 대단하신 분들인 것 같다. 가끔 이 분들은 핸드폰에 유튜브가 아예 안깔려 있으신가? 라고 생각 할 때도 있었다. 글을 읽고 사람 만나는 걸 귀하게 여기는 분들 이심에 분명하다. 그래서 같이 좀 껴서 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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