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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게 쪼잔해서 그렇지 사람은 괜찮은 사람

자기소개타임

by 잡귀채신

"어릴적부터 저는 바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개구리소년 사건이 한창일때에도 해가 지고 경찰이 출동 하도록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으니까요. 하하"

소위 성공하신분들의 이런식의 유쾌통쾌한 고백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다들 지금 천재라며 난리났는데 어릴때부터 바보 소리를 들어왔다니. 희망도 뭐 좀 정도껏 주셔야지. 에디슨이 어릴때 병아리 품고 뭐 이랬다는 일화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부질없는 기대를 받고 져버리고 또 상처를 입었던가.


내 이야기로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자신이 있다. (애초에 기대가 없기 때문에 일단 점수를 좀 먹고 들어가는 면이 있긴 하다.) 내가 많이 들은 소리는 바로 '쪼잔하다'는 거였다.

'너는 애가 어쩜 이리 쪼잔하냐.'

'하여간 쪼잔하기는'

등등. '쪼잔'이라는 단어의 어감 자체가 들을수록 사람을 더 쪼잔하게 하는 힘이 있다. '옹졸함' 이랑도 좀 다르다. 옹졸한건 그래도 배운거 꽤나 있는 양반이 하는 거고, '쪼잔함'은 본투비 느낌이다. '좁은마음'입장에서 보면 옹졸한건 좀 하수고 쪼잔한걸 더 쳐주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꽤 알아주는 쪼잔함을 가졌지만 그래도 '병신'까지는 안가려고 꽤나 노력했다는 점은 좀 칭찬 받고 싶다.

만약에 내가 잡채를 좀 내다 팔았는데 이게 대박나서 거대기업 회장이 된 다음에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릴적부터 쪼잔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점심시간마다 불고기반찬은 손도 못대게 하면서 온갖 쪼잔한 짓은 다 하고 다녔으니까요. 하하"

전혀 유쾌통쾌 하지가 않다. 이게 바로 '쪼잔하다'는 단어가 가진 힘이다.

아무튼 그런 파워풀한 힘에 힘입어, 나는 대체로 안풀리는 삶을 살아왔다. 사실 쪼잔한 사람의 당연한 결과다. 그냥 뭘 좀 하려고 하면 내가 탄 RC카 주인님이 자꾸 조종기에 브레이크를 누르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냥 시키는대로 달려야하는 RC카 주제이기 때문에 감히 주인님한테 '거 검지손가락 좀 까딱거리지말고 잘라버리세요.'라고 말을 못했다. 간혹 그런 주인님을 뭐 '신'이라고 부르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나는 쪼잔하기때문에 신의 위대함을 알면서도 삐져가지고 더더욱 한마디도 안붙인 것도 사실 좀 있다. 그러고 삐죽거리고 있는 애를 누가 신경 쓰겠나. 나같아도 더 보란듯이 외면하겠다. 지금 혹시 그러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정신차리시고 납작 엎으려 원하는 걸 요청 해 봐라. 신의 심리라는 것도 별게 없다. 자꾸 와서 샐샐거리면 뭐 하나라도 해주게 되어있다. 거의 아마 빅뱅 때부터 먹혔던 진리라고 본다. (가끔 이렇게 꼰대처럼 구는것도 사실은 쪼잔해서이다.)


한편, 그런 나에게도 무너지지 않고 나를 지탱해준 또 다른 측면의 평판이 있다.

'애는 괜찮아'

'넌 꽤 괜찮은 애는 맞는데, 나랑은 아닌거 같다.'

'너무 속상해 하지마. 그래도 너 사람은 괜찮다고 다들 그래.'

욕인지 칭찬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말고 그냥 헷갈리게 두겠다. 나로서는 이 말이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타고나길 악마로 태어났는데, 의외로 쪼잔한 덕분에 막장까지는 가지 않고 사람은 괜찮은 정도에 그친 것 아닐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요즘 지하세계정세가 좀 수상하다. 악마적 기운이 가세하면 나도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여러분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함께 참회 하자.


아무튼 나는 이런사람인데, 솔직히 말하면 여러분들이 궁금하다. 이걸 읽고 계실 분이 1명(에이 그래도 1명은 있겠지.)일지라도 나는 '여러분'이라고 부를거다. 오오! 여러분의 소리가 벌써 들리는것 같다. 서론 길게 찌끄리지말고 본론 들어가라고 하시는것 같은데. 근데 지금 너무 바로 시작하기엔 좀 그러니까 맹물로 눈 한번 씻고 오세요.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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