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
뭐 당연한 얘기지만 총을 쏜 놈은 살고 총을 맞은 놈은 죽는다.
식민지국가들이 독립을 하고 나서도 내전을 벌이고 분단사태까지 겪으며 형제끼리 총 겨누고 콩 한쪽 뺏어먹겠다고 난리일 때, 제국들은 어땠었나. 정신 차리자며 과거를 청산하며 훌륭하게 거듭나거나, 과거 청산보다는 우리 먹고사는 데에 집중하거나, 아무튼 열심히 잘 살았지 않았나.
나에게도 비슷하지만 마이크로 하게 작은 단위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초딩 때다. 그때는 나도 꽤 잘 나갔다. 지금까지의 인생 중에서 최대 전성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내 탄신기념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어린이들이 울면서 엄마손을 붙잡고 우리 집으로 쳐들어 올 정도였다. 여기까지 해 두자..내 비루한 지금 모습만 더 부각한다. (왜 혼자 부각시키고 혼자 기죽고 난리)
우리 반에는 일그러진 영웅 두 놈이 있었는데, 그 놈들이 잔뜩 일그러뜨리는 한 녀석을 보고도 모르는 척했던 사건이다. 모르겠다. 그냥 눈이 깔아졌다. 그때는 내 인기의 유지를 위해 별별짓을 다 하고 다닐 때였음에도 그 일그러지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하지만 쪼잔한 마음의 인간인 나는 이 세 사람의 이후 행적에 대해 남몰래 집착했다. 싸이월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싸이월드는 부활해야 한다. 인스타는 글렀다 아주. 국산 만세) 물론 우리가 아직 인생 다 산 150세 정도의 노인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 엔딩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10년 정도 뒤의 이들의 행적을 보면, 역시 '총을 쏜 놈은 살고 총을 맞은 놈은 죽는다.'는 말이 진리처럼 느껴진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아니, 기적이 일어났다면 오히려 총을 쏜 놈에게 일어났지. 그놈은 부모님을 모시고 온 날 이미 모두 앞에서 인간적 참회를 했고, 부모님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경양식집에 가서 돈까스에 혀를 데일 정도로 온기 가득한 삶을 살았으니까. 역시나 또 모르겠다. 명문대는 왜 필터 없이 청소기를 돌리는가.
한편, 총에 맞은 놈은 목숨을 부지하며 그를 사랑하는 누군가의 마음만 잔뜩 아프게 만들면서 살고 있어 보였다. 그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지를 좀 생각해 봐라 새꺄-라고 말해 주려면 켄로치 같은 거장이 되어야만 하는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틀렸다는 증거가 입수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총이나 번개 같은걸 맞고도 '오히려 좋아!' 하며 잘 사는 사람을 가까이서 한번 보고 싶다.
켄 로치 거장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서는 나보다 나무위키가 58000배 정도 낫다. 참고하시거나 그냥 영화를 직접 보시거나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왕의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듯이 나는 감히 이 영화에 대해 이렇고 저렇고 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중에 떠올랐던 내 개인적 경험만 좀 찌그러보는 것으로 리뷰를 마치겠다. 20년이 지나도 내 마음의 보리밭을 흔들어 아작 내놓는 태풍 같은 영화.
하지만,
풀은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