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나는 미루기의 장인이였다.
일평생 나는 미루기의 장인이였다.
늘 오늘의 즐거움을 내일로, 한 달 뒤로, 1년 뒤로 미루며 살아왔다.
초등학생 때는 방과 후를 기다리며 수업시간을 참았고, 중학교 때는 주말을 기다리며 평일의 즐거움을 미뤘다.
머리가 더 큰 고등학교 시절과 길었던 재수시절에도 대학으로 모든 즐거움을 미뤘다.
‘대학에 가면 그때야 모든 즐거움을 누리리라.’하고, 20대 초반의 예쁜 시기를, 스스로 어두운 색으로 물들이며 곧 다가올 무지갯빛 청춘을 눈으로만 좇았다.
그나마 미루지 않았던 시기는 대학에 다닐 때였다. 생각했던 것만큼 찬란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매일이 즐겁고 기대됐다. 잠들기 전 내일이 기대되던 날들은 그 시절이 유일했다. 눈뜨는 아침이 설렜고, 중천에 뜬 해를 보며 걸어가던 통학길이 신났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동기와 수다떨던 대명거리가 날 붕뜨게 했다.
하지만 취준생이 되어, 고시생이 되어 다시 나는 미룸을 선택했다. 다들 당연한 거라고 입을 모아 얘기하지만, 사실 미룸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자기가 꿈꾸는 건설적인 내일을 위해 마시멜로우 이야기처럼, 즐거움을 유예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처럼 떠밀리듯 오늘의 행복을 저 먼 미래로 미루는 사람의 마음은 어둡다. 언제까지 미루며 살아야 하는 걸까. 춥고 해가 짧고 동면하는 분위기인 겨울에는 미룸이 내 몸의 옷처럼 들어맞았지만, 훈풍이 불고 선선히 부는 바람이 시원하고 모두 복삭복삭 마실을 떠날 것만 같은 봄에는 미루는 것을 선택한 내 자신에 의문이 든다. 언제까지 미룰거냐고.
‘미룸’은 우리 뇌의 대처방식이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미룬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불편한 일을 피하고, 대신 일시적으로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캐나다 칼튼 대학의 파이킬 교수는 이 미룸에 대해 20년간 연구했다.
'미루기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 뇌 속에는 미운 6살이 들어있어, 그 체계가 우리를 편한대로 행동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치의 행복을 참아내는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은 뇌 속의 미운 6살이 아닌, 애어른인 6살이 들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은 피치 못하는 어려운 환경에서, 마음껏 어린양을 부리지 못할 때, 의지할 어른이 없을 때, 애어른처럼 부쩍 철이 든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애어른인 아이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그러면서 우리들 마음속에든 철이든 어린아이는 냉정히 외면하고 끊어낸다.
기성세대는 ‘노오력’을 하라고 말하지만, 그럴수록 애어른인 아이는 점점 생기를 잃어간다. 요즘 젊은이들의 출산율이 저조하고, 5포시대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비혼족들이 늘어나는 까닭을 단순히 제 한몸 편하고자 하는 고생을 겪지 않은 젊은이들의 이기심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착실하게 젊은이들의 마음속 6살아이는 따뜻한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어른이 되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