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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Nov 12. 2021

오늘은 와인입니까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매사를 묻지 않으니, 알 수 없습니다. 아는 것만 알려고 하니 결국 모르게 됩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잘못 알고 있는 앎이 있고, 아직 알지 못하는 앎이 있고, 아예 알 수 없는 앎이 있습니다.'(정재현) 그것들이 우상을 만들어냅니다.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억은 앎의 영역에 맞닿아 있어서, 내 삶을 끊임없는 오류로 내몹니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게 하고, 내가 보는 대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것마저 모르고 지나치면, 그 모름은 돌이킬 수 없는 신념이 됩니다. 종교가 됩니다. 그러니 오늘은 투명하면서도 불투명한 와인입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맛이 깊어지는 흐릿한 기억입니까. 그날의 바람과 햇살과 구름이 중요해지는 나날입니까. 그러니까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가 되는 알렉시스 조르바의 '메토이소노(Metoisono, 聖化)'입니까. 결국 모른다는 것은 모름을 아는 일이고, 모름을 아는 일은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이 하나 되는 기억과 망각의 변증입니까.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나만의 축제입니까. 한 시인은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노래했지만, 어딘가에서는 칠월조차 기억하지 않고도 청포도가 익어가고 있습니까. 빈 와인병에 빈 와인이 가득 찬 것처럼 모름지기 모름은 모름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고 돌아 모든 물음은 그 하루의 전부입니까. 그 대답은, 오늘은 와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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