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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Nov 08. 2021

딱따구리 타자기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비를 부르는 타자기가 있습니다. 그런 타자기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타자기를 믿지 않는 시대. 타자기는 이별을 약속한 애인처럼 애틋하기만 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남겨놓은 일기처럼 울컥하기만 합니다. 누가 타자기 안에 침묵을 숨겨놓았습니까. 사랑의 표시입니까. 잊지 말라는 마음의 정표입니까. 사람들은 구경 삼아 탈옥수처럼 두 손바닥을 내밉니다. 타자기에 손을 얹지 않아도 비는 내립니다. 타다닥 탁탁 쏟아지는 비의 문장을 받아 마시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비의 문장은 너무나도 어둡고 투명하여 쉽게 해독되지 않습니다. 투명한 것들은 어두운 터널이 되면 그뿐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터널 속에서 헤어진 연인이 되어, 다시 각자의 방에서 타자기를 두드립니다. 창밖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비가 쏟아집니다. 타자기는 비의 씨앗. 비는 타자기의 열매. 씨앗과 열매 사이의 계절에서 침묵을 뚫고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납니다. 얼굴 낯익은 딱따구리 한 마리가 타자기에 날아와 앉습니다. 탁탁 타다닥 토르락 탁 타다닥. 사랑이 이별을 쫓아가지 못할 때 나는 소리입니다. 터널 속에 숨어있던 아기 딱따구리가 빼꼼히 고개를 내밉니다.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 딱따구리. 진짜 사랑을 약속한 이별처럼 둥지를 떠나갑니다. 비를 부르는 타자기를 믿지 않아도 어디선가 탁탁 타다닥 토르락 탁 타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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