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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Nov 16. 2021

아가미로 숨을 쉬는 나뭇잎이여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나뭇잎이 의자에 앉아 있다. 강가에 던져놓은 돌멩이처럼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제 무게의 속도로 강바닥에 닿고 있다. 주소도 없이, 연락처도 없이 바닥을 찾아가고 있다. 가끔 바람이 어깨를 흔들어 정신 좀 차리라고, 그만하면 되었다고 만류하기도 하지만, 나뭇잎은 스스로 노숙자가 된 사람처럼 제 안으로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처음부터 바닥. 벽이나 지붕이 아닌 바닥. 바닥 중에서도 바닥. 네발 달린 의자에 앉아있기 좋은 바닥. 마음이 누추하여, 그나마 엉덩이 붙인 곳이라도 미지근한 바닥.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어 만난 적도 없는 바닥. 처음부터 주소 따위는 필요 없었던 바닥. 바닥에 놀라는 바닥. 바닥을 다 드러낸 바닥. 바닥, 바닥, 바닥. 나뭇잎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날을 기약하며, 강바닥을 뒤집는다. 아가미로 숨을 쉬는 나뭇잎이여, 가시를 지닌 몸짓이여. 미처 몰라봐서 미안하다.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이 계절은 여전히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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