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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Nov 17. 2021

마음을 붙드는 숟가락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되는데요, 뭘." 팔을 붙들며 끝끝내 식탁에 앉힌 사람. "찬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라며, 비밀스럽게 숨기고 숨겨놓은 씨 간장을 내어놓는 사람. 마음 불편해할까 봐, 뒤돌아서서 설거지를 하는 사람. 뒷모습으로 묻고 뒷모습으로만 대답하는 사람. 수돗물을 잠그며, "요즘도 혼자 영화 보면서 울고 그러세요?" 물어보는 사람. 엔딩 크레디트처럼 기억력이 좋은 사람. 기억력 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 슬픈 장면만 골라 기억하는 사람. 그래서 슬픈 장면에서만 기억나는 사람. 그러므로 다른 반찬 소용없이도 간장 종지처럼 맨날 웃고 사는 사람. 맨밥도 맛있다는 것을 맨 처음 알려준 사람. (...) 그 사람 같은 숟가락을 본다. 간장 한 스푼을 뜨면 딱 좋을 크기의 숟가락. '숟가락'을 '손가락'이라 쓴 아이의 밥숟가락 같기도 한 숟가락. 누군가의 티스푼 같기도 한 숟가락. 한때 놀던 가락이 있어서, 가만 바라보고만 있어도 울음의 장단으로 밥 먹여주는 숟가락. 혼자 영화를 보며 다시 눈물을 배우고 있는데, 밥시간 딱 맞춰 연락을 한 숟가락. 요즘에는 맨밥에 씨 간장을 넣고 비벼도 통 숟가락 맛이 안 난다며, 안부를 전하는 숟가락. 그 말에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며, 밥 먹고 가라며 마음을 붙드는 숟가락. 그 숟가락에 숟가락을 얹고 사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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