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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Nov 14. 2021

입동 지난 어느 초겨울 단 하루의 일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급한 원고를 잠깐 미뤄놓고 외출을 했다. 마감 기일을 넘긴 원고보다 더 급한 일은, 일요일 오후의 해찰. 젖은 낙엽을 발로 차며 일요일 오후 두시의 햇살을 뒤집고, 차의 기억이 끊긴 도로에서는 무작정 한쪽으로 생각을 치우치며 걸었다. 생뚱맞지만, 붉게 물든 단풍나무를 바라보며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을 생각하기도 했다. 패션에는 영 젬병이어서, 오늘은 그냥 벙거지 모자나 푹 눌러쓰고 엉덩이 붙일 곳이면, 아무 곳에나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보았다. 이따금씩 하늘의 구름이 밀린 원고를 독촉하기도 하였지만, 그보다 더 급한 일은 마음의 평정심을 찾는 일. 해찰과 평정심은 같은 말일까. 땅에 떨어진 나뭇잎 한 장을 주워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의 입술이라 생각하고 대화를 했다. 그 대화 끝에 갤러리에 들러, 최대한 쓸쓸하지 않은 마음으로 내 왼손 그림을 보았다. 겨우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천년을 뒤척이다 깨어난 사람처럼 오른쪽 어깨가 시큰거렸다. 아무리 그래봤자, 입동 지난 어느 초겨울 단 하루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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