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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Nov 20. 2021

전나무 숲과 멀어져 있었다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겨울 숲에 들었다. 전나무 숲이었다. 숲은 우거져야 하지만, 전나무란 이름으로 하나를 이루고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 나무였다. 나도 말을 하지 않았으므로 나무였다. 말 없음 하나로 숲의 의미였다. 아니, 전나무는 나처럼 양팔간격으로 서서, 오후의 햇살을 듬뿍 받고 있었으므로 나였다. 하마터면 서로 마음을 들키는 사이였다. 가만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나무는 새처럼 재잘거리는 듯 보였다. 나무와 대화를 하려면,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지, 고민하는 순간 나무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나무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아차, 다시 서로 어긋났구나 싶어, 나는 다시 나였고, 나무는 다시 나무였다. 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나무'였다. 그 전나무 숲을 벗어나 되돌아오는 길,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지금 어디쯤 계신 건가요? 전, 나무, 숲요. 그가 나를 짠하게 바라보았다. 금요일 오후 2시 22분의 일이었고, 세상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전나무 숲과 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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