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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Nov 22. 2021

이번 생은 어쩔 수 없을 테지만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대인관계'와 '데인 관계'는 다르지만 같은 말.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말은 이미 사람에게 데인 적이 있다는 말. 관계는 모두 거기서 거기란 말.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같은 말. 울화통이 치미는 말. 사람에 데인 사람은 사랑을 찾고, 사랑에 데인 사람도 사랑을 찾는다는 말. 같지만 다른 말.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싶다면 대인관계를 정리하고, 모든 사랑과 잘 지내고 싶다면 데인 관계를 먼저 정리하라는 말. 아직 부끄러움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에게 "오늘은, 몇 살이에요?"라는 말을 들어보라는 말.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도 믿지 않겠다는 말. 그래서 철이 들수록 불에 덴 상처보다 얼음에 데인 상처가 더 뜨겁다는 것을 알게 되는 말. 손목이 잘린 사람에게 아무 생각 없이 악수를 청하게 되는 말. 생각난 듯 나도 모르게 내 몸에 숨겨놓은 낭떠러지를 들켜버린 말.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며 허공의 호주머니에 빈손을 넣어 보라는 말. 사람 관계 빼고는 모든 걸 위로하는 말. 애써 못 알아듣는 척하고 싶지만,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에 사로잡히게 되는 말.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알게 되는 내상(內傷) 뿐인 말. 데인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문을 닮아가고, 모든 상처는 처음부터 대인관계였다는 말. 데인 사람은 데인 사람들끼리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말. 혹은 없다는 말. 쿠폰 열 장을 모아도 사랑은 잉여가 될 수 없다는 말. 관계에 데인 사람끼리 잘 지낼 턱이 있나 깨닫는 순간, 우리가 끝끝내 포기하지 못했던 관계는 결국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말. 대인관계라 쓰고 데인 관계라 읽어도 좋을 말. 그 반대라 해도 이번 생은 어쩔 수 없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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