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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Nov 28. 2021

나는 나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정무직공무원 김정배, 역사학자 김정배, 기타리스트 김정배, 기업인 김정배, 사회기관단체인 김정배, 전문 직업인 김정배, 의사 김정배, 기술 관련 종사자 김정배, 언론인 김정배, 교육자 김정배, 영화 스태프 김정배, 그리고 나 글마음조각가 김정배. 이 외에도 같은 이름은 까마득하다. 동사무소 같은 네이버 인물 검색이 김정배가 이렇게나 많다고 알려준다. 그 김정배가 그 김정배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소싯적에는 작명소처럼 두꺼운 전화번호를 들춰보며 김정배를 찾기도 했다. 더 소싯적에는 김정배에게 전화를 걸어 목소리라도 들어볼까 고민하기도 했다. 진짜다. 고민이 고민으로 끝났으니 망정이지, 그 시절 김정배가 김정배에게 전화라도 걸었으면 어쨌을 뻔했나. 짐작과는 달리 반갑게 인사를 나눴을까? 한바탕 웃고 말았을까? 아니면 이름이 이름에 따지며, '너 지금 거기 어디야'하고 톡 쏘아붙였을까. 그도 아니면 김정배가 김정배의 멱살을 잡고 술이라도 한잔 나눴을까. 까마득하게 줄지어 선 까마귀 떼를 보며 김정배를 생각한다. 상갓집의 검정 구두 같은 까마귀 떼. 한 번 벗으면 누가 누구의 신발인 줄 모르고 밟는 까마귀 떼. 술에 취해 신고 가버리는 이름들. 어리둥절 잃어버리기도 하는 이름들. 하지만 이 세상에 김정배는 단 하나뿐이지. 김정배의 신발은 김정배만 신을 수 있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더라도 김정배는 김정배를 사랑해야 한다. 나는 김정배를 사랑해야 한다. 까마귀가 까마귀의 이름에 묶여 살더라도, 자기만의 이름을 살아내야 한다. 먹여살려야 한다. 순간순간 내가 나임을 까먹고 살더라도, 나는 나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보인다. 까망이 모두 다 같은 까망이 아니라는 사실을. 같은 이름에도 천 가지 빛깔이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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