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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Nov 30. 2021

너무 마음 맑은 거울 같은 겨울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소소한 말다툼을 벌였다. 상대는 나에게 따질 듯이 물었고, 나는 따져봐야 소용없다는 듯이 말했다. 상대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나도 지지 않을세라 상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 뒤에는 벽이었고, 상대의 뒤에는 거울이 있었다. 벽은 아무래도 뚫을 수 없고, 거울은 내 표정을 이미 꿰뚫고 있었다. 상대는 나와 싸우고 있었고, 나는 어느새 거울과 싸우고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나와 싸우고 있었다. 거울은 내가 이마를 찡그리면 동시에 찡그렸다. 입을 씰룩 거리면 보란 듯이 씰룩거렸다. 무표정엔 무표정으로 응대했다.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나는 나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거울로 무장한 나를 이길 수가 없었다. 상대는 순간 그것을 간파하고는 왜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나와의 싸움에서 패배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상대는 그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울 속의 나만 그 진심을 받아들였다. 그 모습을 묵묵하게 바라보던 상대가 뒤를 돌아보며 거울 속의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상대는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마음 맑은 거울 같은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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