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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Dec 06. 2021

슬픔은 슬픔으로 다스리는 거라며

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혼자서 해장국을 먹고 있는 사람. 일종의 유배 중이라는 생각. 붙들 손목이 없어 가느다란 숟가락의 손목을 붙들고 뜨거운 국물을 뜨고 있다는 생각. 나는 한술 더 떠 어디로 도피 중인 몸일까. 어느 부족의 품으로 망명 중인가. 허기를 몸에 들여야만 바닥이란 것을 볼 수 있는 날들. 뚝배기 그릇이 바닥을 가득 채울 때까지 새벽은 숙취에 붙들린다. 그 힘으로 다시 이 세계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 그것도 잠시, 모든 죄가 첫눈에 덮이는 새벽이다. 그늘이 닿지 않는 곳부터 첫눈이 쌓인다. 가끔 무쇠 솥단지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첫눈. 장작불에 펄펄 끓어오르는 첫눈. 해장국이 시원한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첫눈을 사나흘 동안 푹 고아 냈기 때문. 도망치던 사람의 자백을 붙들어 뽀얀 국물을 우려냈기 때문. 술을 진탕 마신 후 내일의 생활을 걱정하는 사람과 지금의 취기를 붙들고 씨름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애틋한 삶을 사는가. 오늘 하루도 한 가지의 슬픔만이 찾아들면 좋겠다. 우거지 해장국 하나면 모든 속이 확 풀리는 그런 날들이면 좋겠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식당이 한 가지의 음식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겠지. 기억에서 사라진 강을 찾아 다시 도강하기 직전, 해장국을 찾는다. 도망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말하는 오늘 하루가 탁주 한 잔을 내놓는다. 술은 술로 깨우고 슬픔은 슬픔으로 다스리는 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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