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하늘에 비행기 하나 떠 있다. 빈 노트에 마침표만 찍어놓은 기분. 그 기분을 달래려고 사진 한 장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날의 기분. 기분이 태도가 되거나 막무가내 의미 없는 한 장의 사진으로 현상되지 않으려면, 감정에도 엔진이 필요하다는 생각. 이륙과 착륙의 지점을 잘 기억해야 한다는 다짐. 잊고 사는 다짐. 다짐만 하게 하는 다짐. 그래서인지 내 슬픔은 오늘도 내려야 할 기분을 찾지 못하고, 암실 같은 어떤 시간에 비상착륙을 시도한다. 이내 기억의 빛을 모두 차단한다. 늦게 배운 슬픔처럼 나는 아득해지고, 어느새 비행기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나는 결국 날개 꺾인 시계마냥 혼자서 두둥 거린다. 내가 써야 할 문장과 헤어진 마침표가 된다. 하지만 이곳은 모든 문장이 사라지는 암실. 흑백의 암실. 아, 잊고 살았구나. 암실에서 현상된 사진은 늘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인화된다는 사실을. 눈 앞에서 사라진 비행기는 마침표가 아니라 문장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그래서 시인은, 나는 그리고 우리는, 서로가 남긴 문장에 쉽게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