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비와 그림자가 함께하는 날이 좋다. 비를 생각하면 그림자는 어느새 흙탕물과 뒤엉켜 떠내려가고, 그림자를 생각하면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비와 그림자를 함께 생각하는 이유는, 그 틈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계절이 있기 때문. 계절이라고 하기에는 영 어색하고 모자란 그런 시절이 있기 때문. 그 시절에는 연꽃도 우산처럼 피었다 지고, 진흙탕 같은 날씨마저 빗물처럼 맑게 흐르기 때문. 우산을 들고 나와 양산처럼 둘러쓰거나, 양산을 들고 나와 우산처럼 쓰고 다녀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그런 날씨가 있기 때문. 그래서 비와 그림자는 함께 걸을 수 없지만, 함께 걸을 수도 있는 어떤 하루. 이별을 통보하러 갔다가 우산만 잃어버리고 마는, 그동안 잊고 지내던 그림자만을 마음의 집으로 데리고 돌아오는, 그런 비 내리는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