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외할머니는 흰쌀밥 한 공기를 퍼서 이팝나무 아래 두곤 하였습니다. 새가 와서 먹고, 고양이가 와서 먹고, 심지어는 비와 바람과 햇살이 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다 먹고 나면, 그제야 이팝나무는 허리그늘을 굽혀 밥 한술 뜨는 것이었습니다. 오래전 일이지요. 이제 기억은 누룽지처럼 시간에 눌어붙어 아득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 쌀밥을 먹고 자란 나무는 이제 이팝나무가 되었습니다. 말문이 트여 사람의 말도 합니다. 이팝나무에 맨 처음 들었던 말은 삶이란 나눌 수 없는 것들을 나누는 것. 잘 익은 수박처럼 슬픔의 절반을 보기 좋게 딱 나눠 놓고 먹는 것. 그러다 보면 이팝나무에도 수박이 열리고, 수박은 과일이 아니라 채소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팝 다 지고, 나무만 남은 계절에 앉아 누군가 남겨놓고 간 흰쌀밥 한 공기를 바라봅니다. 밥뚜껑에 두 손을 얹으니 두근두근 참 따뜻합니다. 밥알을 세듯 시간은 흘러가고, 미처 마음에 담지 못한 밥알들은 술이 됩니다. 술에 취한 새와 고양이와 비와 바람과 햇살 그리고 나조차도, 이팝나무 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