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너는 내게 다가와 기타를 연주하곤 하지.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왼손의 맥을 가만 짚어가며, 가을이 위급하다 말하지. 그러는 동안 나는 그림에 스며든 음악 한 장을 떠올리며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 스타카토, 왼손을 가져다 대지. 도망쳐 봐야 소용없다는 말에 모두가 야반도주하고, 도망치기를 포기한 것들만이 남아 음악 같은 그림을 이루지. 그림 같은 음악이 되지. 삼대가 우려먹어도 씻기지 않을 그리움이 되지. 이제 서로의 언어를 함께 길러가며, 한목소리로 다급해질 때 우리의 음악은 얼마나 더 외로워지는 걸까. 그래서 그림은 인간의 옆모습을 드러내는 일이지. 그래서 음악은 보이는 옆모습과 보이지 않는 옆모습의 박자를 바꾸는 일이지. 나는 오늘도 내게 주어진 악보 같은 슬픔 앞에서 '그건 그렇고'를 반복하며, 다시 음악을 그리고 있지.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베개에 오랫동안 얼굴을 묻은 표정을 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