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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음조각가 Oct 02. 2022

뽁뽁이처럼 말했다

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택배가 왔다. 주문한 기억이 없는 물건이었다. 받는 사람을 보니 내 이름이 맞았다. 크기도 뭉툭하니, 꽤 두툼했다. 처음에는 누가 장난치려고 벽돌 같은 것을 보낸 줄 알았다. 몰래카메라라도 찍는 줄 알았다. 그도 아니라면, 마음 착한 친구 중 한 명이 헌책방을 여행하다 생각난 듯 보내온 선물이 아닐까, 혼자서 헛물켜기도 하였다. 아무튼 내 것인 듯 내 것 같지 않은 물건을 책상에 두고 꼬박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아무래도 마음이 쓰여, 레벨지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연락처를 찾아 전화 걸었다. 젊은 청년이었다. 서울 어디 헌책방이라고 했다. 단 한 번도 얼굴 마주한 적 없는 우리 둘은 몇 마디에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내게 배송된 책의 이름을 서로 맞춰 나갔다. "싯타르다, 빨간머리앤 맞나요?" "네 맞아요." "음, 그리고 오셀로, 십이야도요." "맞아요. 맞아요." 마치 로또복권의 당첨번호라도 맞은 듯 헌책방의 주인은 한층 밝은 목소리로 주소를 잘못 입력하여 책이 잘못 배송되었다고, 내게 거듭 사과를 전했다. 나는 그보다 한층 더 밝은 목소리로 '괜찮아용. 벽돌만 아니면 되지용'이라고 잘 포장된 뽁뽁이처럼 말했다. 그 말에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빵 터트렸다. 그와의 첫 통화이자 마지막 통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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