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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Jun 19. 2022

재즈와 끈적임에 대하여

믿을 구석이 있다는 것

내가 처음으로 재즈를 직접 경험한 것은 2014년도 가을이었다. 그날 전까지 재즈는 내게 자주 듣는 장르에 있지 않았다. 가사 없는 instrumental 곡들로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이걸 듣기만 해서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too much 한 감이 있었다. 그러다 찾아온 기회가 블루노트에 소속된 베테랑 가수의 라이브 공연이었다. ‘아우디 라운지 by 블루노트’로, 재키 테라슨 트리오의 내한공연이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경이했다. 그때의 벅찬 경험을 나누기 위해 당시에 쓴 일기 내용의 일부를 가져왔다.


포괄적인 재즈를 말하려는  아니다. 라이브 공연에서 느꼈던 것을 적는다 … 재즈는 ‘불완전한 ()’라는 것을 느꼈다. 남녀 간의 사랑과 동료  우정에 대해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재즈는 인생과 많이 닮아 있다. 음표가 그려진 악보가 있지만 실제 연주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연주하는 자신의 기분과  기분을 함께 공감하고 맞추어가는 악기들일 것이다.


재키가 피아노로 멜로디를 만들어내며 자유롭게 움직인다. 묵묵히 베이스를 연주하는 버니스 얼 트래비스 2세, 그리고 항상 재키를 주시하고 있는 드러머 저스틴 포크너.


연주  가장 감동을 받은 부분이다. 피아노도 좋지만 드럼의 리듬을 좋아한다. 드러머 저스틴은 무아지경으로 연주하는 재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재키의 리듬에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그의 눈빛에서는 안정감과 믿음이 느껴진다. 재키가 실수를 한다. 저스틴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재키가 편한 타이밍에 다시 들어갈  있도록 맞춘다. 이렇게 둘은 서로를 돕고 있다. 마치 ‘내가 항상 옆에 있을게, 내가 만드는 리듬 안에서 네가 멋진 멜로디를 만들어주고 있어라고 말하는  같았다. 각자의 악기에 집중해 있는  같아 보였지만, 그들 사이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인정이 있었고, 그것들이 멋진 공연을 만들어냈다.”  


2014년 공연 후 재키 테라슨과 함께


저번 주엔 연남동에서 백현진의 공연을 보고 왔다. 확실한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백현진을 보기만 해도 좋았지만, 색소폰의 김오키와 베이스의 전제곤, 건반의 진수영, 그리고 기타의 이태훈의 앞에 선 백현진 이 더욱 흥미로웠다. ‘왜 이 사람들은 백현진의 무엇을 믿고 오랫동안 함께 밴드 생활을 해오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밴드는 보통 보컬을 맡는 밴드 리더의 실력과 카리스마가 중요하다. 밴드의 얼굴이자 음악 정체성의 가장 표면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밴드의 구성원이 누구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오래 호흡을 맞춘 밴드와 오래 활동하고 있느냐라 생각한다. 밴드 활동은 분명 음악적 활동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백현진은 sticky person이다.


회사를 세웠거나 운영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예체능 분야의 카리스마틱한 리더들과는 다른 종(breed)들이다. 창업자들을 보며 정말 어렵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이 회사의 중심이 되어줄 수 있을까의 고민이다. 그래서 창업자들은 sticky 한 사람이 되기 위해 꾸준히 자기 자신을 돌보며 사업의 방향성과 함께하는 동료들을 위해 밤낮 고민한다. 아직 세상에 보여준 것 없는 회사에 직원들이 한 둘 늘어가는 이유는 사업 계획보다는 그 회사를 만든 사람 때문인 이유가 훨씬 많다. 대표에게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들은 똑같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초기 창업자는 어느새 자기의 회사가 망망대해에 진입했다는 것을 안다. 여러 파도를 겪으면서도 sticky 함을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Sticky 한 대표들은 개인적으로도 많은 희생을 했고, 또 묵묵히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을 것이다(좋은 글: 잘 될 것 같았는데 안 된 스타트업 CEO들의 특징​).


Sticky 하다는 것은 사람이 아닌 상품과 서비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Product that sticks, 즉, 사용했을 때 훌륭한(engaging) 사용감(value)을 제공하여, 흥미와 관심을 꾸준히(consistent) 자극하는 상품이다. 다시 말해 사용할 때의 좋은 경험이 단순 일시적이지 않으며, 또 쓰고 싶어지는 필요한 상품이다.


나에게 sticky 한 상품이나 서비스는 무엇일까? 내가 일상적 활동들을 수행함에 있어 분리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한 가지로, 나는 주말에 카페에 가서 글을 쓴다. 그때 내겐 노이스 캔슬링이 되어 주변과 잠시 분리해줄 수 있는 아이팟 프로가 sticky 한 상품이다. 또는, 원격 근무를 하는 내게 재택근무와 병행할 수 있게 해주는 공유오피스의 라운지 멤버십이 sticky 한 상품이다. 이런 상품들은 사용할 때 만족감도 높고, 또 필요시 가장 좋은 선택지가 된다.


이렇게 sticky 하다는 것은 사람이나 상품/서비스를 모두 묘사할 수 있다. 진짜 sticky 한 것(사람)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존재 이유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아는 것(사람)이다. 사람이 불안해하거나 우유부단한 모습이 없으면 자연스레 신뢰가 가는 것과 비슷하다. 불안하지 않다는 것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마음 깊숙이 믿는 것(faithful)에서 출발하고, 그것을 묵묵히 해 나가면서 그 사람은 더 sticky 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워런 버핏은 ‘위험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데서 온다’고 했다. 분명한 이유를 갖는 것이 위험을 기회로 만드는 방법이다.


점점 사람이 중요해진다. 사람과의 관계는 가장 값 비싼 관계다. 항상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관계라지만, 만약 내가 sticky 하다면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더 오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 내가 이 세상에 발 붙이고 사는 이유와 이타적인 분명한 목적을 찾고 지켜야 한다. 인생에서 실수는 선택이 아니다. 재키 테라슨의 밴드 동료들은 한 동료가 실수를 해도 그것을 만회하도록 도왔고, 밴드를 새로운 음악적 모험으로 이끌었던 것이 내가 그날 경험한 재즈였다. 그래서 재키 테라슨은 sticky person이다.


You are really good at jazzing! <Soul>



essay by 준우

photo by  Visax & 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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